대적
- gwachaeso
- 3월 19일
- 2분 분량
<주술회전>
본래 스쿠나와 마주한 이타도리 단문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에 인간의 복심 아래 태어났던 어느 저주는 영혼의 형태를 조정하는 능력으로 인간의 육신까지 덩달아 변이시켜, 끔찍이도 많은 인간을 끔찍하게 ‘저주’한 바 있었다. 그에 따르면 영혼과 육신 중 먼저 난 것은 영혼이라 영혼의 형태가 변하면 육신도 이를 따라가게 되는데, 반대로 육신의 변화에 영혼도 함께 영향을 받는지는 이타도리가 직접 들은 바 아니어서인지, 그래도 제법 오래된 때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타도리의 기억에 남아있진 않았다. 물론 이 저주의 주장은 하나의 설일 뿐으로, 지극히 오래 살아온 어느 인간은 반대로 육신이 먼저라 주장하며 그에 따른 증거로 머리 뜯긴 잠자리와 같은 어느 몸뚱어리의 행위를 제시했으나, 이 역시 이타도리가 직접 본 바는 아니었다. 육신이 먼저든 영혼이 먼저든 둘 사이에 복합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고 이타도리 역시 딱 그 정도까지만 이해하면 충분했다. 다만 이타도리의 의견을 궁금해할 순 있을 것이다. 인간은 육신이 먼저일까, 영혼이 먼저일까? 시야에 담기는 저 거대한 자를 보라. 영혼의 형태를 따라간 것이 육신의 형상이라면 저, 거대하나 결코 거룩하지 못한, 절대 거룩할 수 없는 악한의 영혼 역시 저러하다는 걸까? 본래는?
아, 나는 그동안 무엇을 담고 있었나?
문득 이타도리는 그동안 제 이름처럼 불렸던 ‘그릇’이란 표현이 진정으로 옳은가 하는 고민을 한다. 만약 그것이 옳다면, 육신에 담기는 이, ‘영혼’이란 것은 고체보다 액체에 가까운 물성을 지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담는다는 표현이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붓는다는 동사가 좀 더 적절하지 않나 싶었다. 육신의 틀대로 부은 영혼이 저와 똑 닮은 탓에 자신은 그간 그와 저를 동일시했으나, 보라. 지금 저기 저곳에 서 있는 자를. 인간보다는 저주에 더 닿아있는 자를. 그 순간, 분명 착각이지만 육신이 찢어지는 것 같은 환상통이 그를 덮쳤고 덕분에 온몸이 욱신거렸다. 더 이상의 결속은 없었다. 분열된, 아니, 분리된 그는 이제 저와 완벽히 단절된 자를 바라본다.
자세를 바로잡는다. 이제 곧 그가 공격해 올 것이기에, 이타도리는 제 대적 앞에 어느 한 발짝 물러섬 없이 어느 한 구석 물러짐 없이 단단히 제 팔과 다리를 세워 굳힌다. 보라, 육신이 먼저든 영혼이 먼저든. 합일이 먼저든 이격이 먼저든. 중요한가? 대적을 대적하는 일에? 지금? 이타도리는 그에 대답할 수 있었다.
아니.
저주를 죽이는 의미는 후일로 미뤄두겠다 했다. 지금도 그 결정에 이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