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 gwachaeso
- 3월 19일
- 1분 분량
<주술회전>
상자 안에 갇힌 이타도리 단문
상자는 비좁고 어두웠다. 구겨져 들어 있는 사람은 이타도리뿐이었다. 그가 자신이 갇힌 공간을 상자라고 표현한 이유는 어둠에 적응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을 때 그림자가 보다 짙게 낀 네 개의 모서리와 면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타도리는 자신이 상자에 갇힌 것을 알았다. 밖에서는 그것이 관으로 보일 줄은 알지 못했다. 관이라니, 이타도리는 죽었는가? 사실 이것은 모두 꿈속의 일로, 꿈속의 이타도리는 죽은 것이 맞았다. 아니면 관에 들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올바른 죽음을 맞이했는가? 이타도리는 그것 역시 알지는 못했다. 올바른 죽음의 판단은 누가 하는가, 본인이? 아니면 살아있는 타인이? 본인이든 타인이든 그럴 권리가 이타도리에게 있는가? 그럴 자격이?
이타도리와 함께 갇힌 자에게는?
상자는 비좁고 어두웠다. 구겨져 들어 있는 사람은 이타도리뿐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함께 부은 어둠이 있으니 빈틈이 존재치 않도록 이타도리가 채우지 못한 공간을 남김 없이 채워 메운 그것에게는 의지도 있고 이지도 있고 이름도 있었다. 이타도리는 그것과 함께 매장될 작정이었다. 무연고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공터에 혼자, 가라앉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함께 갇힌 그것도 그런 최후를 바라느냐고 묻는다면 이타도리는 무어라 대답할까? 알 바 아니라고? 어쩔 수 없다고? 이타도리의 눈은 시부야의, 무엇도 하나 남지 않았던 공터를 그리고 있다. 그의 관은 그곳에 묻힐 것이다. 아무도 파내지 못하도록 깊이, 아주 깊이.
유린당한 땅 밑에, 침해당한 생명 아래. 이것이 아마도 그가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죽음일 거외다.
이타도리는 그걸 위해 제 제 관에 담긴 가장 짙은 어둠과 함께 죽을 작정이다. 제가 갇힌 게 관인 줄도 모르지만 몰라도 그에게는 딱히 상관없는 사실이므로. 그럴 작정이다. 그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