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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소년

  • gwachaeso
  • 3월 19일
  • 2분 분량

<주술회전>

그리고 늙은 소년. 폭력성, 잔인함 주의. 팬아트



씨네필이라면 모를 리 없는 영화이긴 하나, 관람 가능 연령이 되려면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지라 섣불리 보았느냐고 묻기는 어려운 영화를 연상한다. 물론 청소년 출입 금지 업소인 도박장―파친코에 들락거린 전적이 있는 소년에게는 가볍게 무시해도 좋은 제약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 혼자 소파에 앉아 인형을 끌어안고 영화를 보던 소년은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장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보다 그는 이 영화를 보았을까?) 앞서 죽여버리겠다고 엄포 놓은 자 앞에 서슴없이 개 흉내를 내는 영화 속 남자의 꼴은 처절했다. 이윽고 영화 속 남자가 말한다. 내 죄는 내 혀에 있으리니 내가 이를 입안에 품기보다는 잘라내 뱉어 용서를 구하리다. 남자가 알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종교의 경전에는 죄 범한 눈을 뽑아내고 천당의 문턱을 넘으라는 구절이 있었다. 눈이 죄를 지었다면 뽑아버려라. 손이 죄를 지었다면 잘라 버려라. 혀 역시 마찬가지리니 죄지은 혀를 잘라낸 남자는 과연 천당에 이르렀을까? 모르나, 그 당시 소년은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랐다. 천당 따위 알 게 뭐야. 나는 내가 숨을 거둘 때 내 곁에 모여 있을 사람들을 원해. 소년은 과욕을 부렸나? 그게 과연 과한 욕심이었을까?


후일 소년에게는 10월 마지막 밤의 자백을 요구하는 자가 있어 소년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응. 내가 죽였어. 이건 거짓말도 부정도 아니야. 그렇게 소년은 제 혀로 자신을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자로 만들어 버린다. 잘라낸다 해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스스로 뒤집어쓰며 그 죄를 제가 지은 죄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소년의 죄는 그 혀에 있었고, 그 머리에 있었고, 그 존재에 있었다. 또한, 그럼에도 그 죄를 잘라내지 않는 소년이다. 소년에겐 말해야 할 게 아직 남아 있어 혀가 필요했고, 생각해야 할 게 남아 있어 머리가 필요했다. 존재 또한, 무존재로 올바르게 돌아가기 위해선 아직 필요한 것 중 하나였다. 그런 저를 조롱(嘲弄)하는 자를 저주하기 위해서. 저주를 저주하기 위해. 그것을 읊기 위해서, 소년에겐 아직 생이 필요했다. 혀가 필요했다.


찰칵찰칵 하고 가윗날이 접히며 내는 소리가 소년의 귀를 날카롭게 쑤셔대도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곳에 앉은 죄, 저주 자신, 재앙 자체를 올려다보고, 노려도 본다. 그자는 손에 들린 가위로 소년을 조롱(操弄)하는 자이니 들어줄 생각 따위 하나 없는 말을 혀로 놀리며 소년을 내려다보고, 낮추어 본다. 이리 말한다. “잘라내 주랴?”


무엇을, 따위의 반문은 필요 없는 질문이다. 잘린 혀 따위, 갖고 싶을 리가 없다. 그런 걸 내어줄 거라면 팔다리 중 하나를 내어주는 게 도움이 되겠다. 그를 죽이는 데. 그러나 소년은 엄포하지 않고, 처절할지라도 개 흉내를 낼 생각 따위도 하지 않는다. 단지 말할 뿐이다. 널 죽일 거야. 널 반드시 죽일 거야. 널 기필코 죽일 거야. 그럼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또 보자, 이타도리 유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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