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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소리

  • gwachaeso
  • 3일 전
  • 2분 분량

<HQ!!>

카게야마가 "쾅!" 서브하는 이야기



아이는 소리, 항시 빛보다 조금 늦는 소리에 기민하게 반응하였다. 아기일 적엔 그리 예민하게 여기지 않아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저를 재우는 임무만으로도 충분히 고된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양육자의 어깨에 짐을 더욱 얹을 뻔했지만, 다행히 아이가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건 잠투정 부릴 나이를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였다.


소리는 빛보다 늦기 때문에 천둥 번개가 칠 때 하늘을 보면 언제나 번쩍임이 먼저, 우르릉 하늘을 울리는 소리는 그 뒤에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어딘가의 피뢰침을 향해 꽝! 번개가 내리치면, 빛이 흘리고 온 우렛소리는 조금 뒤에야 “꽝!”하고 빛을 쫓아온 자리에 자신을 풀어놓았다.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들도 많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제나 곁을 떠나지 않는 믿음직한 보호자 옆에서 무서울 건 하나 없다는 사실을 절로 배웠기 때문일까?


저것 보렴, 토비오. 방금 하늘이 번쩍였지? 이제 천둥이 칠 거란다. 소리는 항상 빛보다 늦거든.


조부의 무릎 위에 앉아 미리 잘 걸어 잠근 유리창 밖을 올려다본다. 현명한 조부는 언제나 그에게 옳은 조언을 주어 그를 깨우쳐주었다. 과연, 조금 기다리면 “쿠구구구”하고 잘게 울리는 하늘이다. 꽝이 아니네. 그러네. 이번엔 꽝이 아니구나. 그럼 꽝 소리가 날 때까지 다시 기다려볼까? 응. 어린 손주가 혹 천둥소리를 무서워할까 봐 잠들 때까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셨던 조부는 이제는 좀 걱정을 더셨을까 모르겠다. 적어도 천둥소리를 무서워하지는 않는 아이로 자랐으니 그 점에 한해서는 마음을 놓으셨기를 바랄 뿐이다.


어릴 적, 그러나 좀 더 자라서는, 바닥을 탕! 내리찍는 공의 궤적을 눈으로 좇는 것도 즐거워했지만, 탕! 하고 울리는 그 소리, 울림. 소년은 그 파열음을 좋아하게 되었다. 더욱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탕!”은 손이 공을 내리치는 순간 울렸다. 손은 그 손이 가르는 공기마저 찢어버리는 듯했고, 소리는 찢어진 틈새에서, 또는 찢어지는 그 순간 이 세상에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공을 치는 순간의 소리이기에 날아가는 공보다는 빨랐다. “탕!” 그 뒤에야 소리를 쫓아가는 것 같은 공. 그게 아니라는 걸 일러주며 “퍽!” 바닥을 내리치는 또 다른 소리.


공을 높이 올린 후, 팔을 뒤로 젖혔다가, 도약해서 스파이크. 아무에게서나 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아이는 아직 한참은 더 자랄 테지만 지금은 그 감이 잡힐 리 없는 제 손을 내려다보고, 들어 올려 다시 보았다. 어떻게 하면 저런 서브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소년은 저런 서브를 하고 싶었다. 저런 소리를 내고 싶었다. 끝끝내 가르쳐주지 않고 떠난 사람이었지만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그가 배우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누구는 그렇게까지 재능이 넘쳐야 할 이유가 있겠냐고 투덜거렸지만 소년은 지독한 연습 벌레이기도 했다. 탕, 내리찍는 거야. 탕. 빈 곳을 찾아, 받기 힘든 곳을 찾아, 경계를 가까스로 벗어나지 않는 지점을 향해, 블로킹으로 가로막히지 않는 최강의 공격을.


소리는 빛보다 늦고, 우리의 눈은 물체에 반사된 빛을 통해 세상을 보았다. 그렇다면 귀보다는 눈이 더 빠르다는 이야기가 될 텐데, 그렇다 보니 빛을 놓친 눈 대신 소리를 잡은 귀가 그가 인식하지 못한 세상을 종종 일러주는 일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눈이 놓친 순간을 끌어와 펼쳐놓는 소리. 번쩍임을 보지 못했어도 상관없었다. 소리가 알려주면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 다일 수는 없었다. 귀를 기울이면 “꽝”, 아니면 “탕” 울리는 그 소리가 소년은 좋았다. 빛보다 빠른 것처럼 느껴지던 소리가. 그리고 빛과 같이 날아가는 공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또 소리가.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휘둘러지는 소년의 손.


눈이 놓친 이 순간은 다시 소리로만 기억되리라.


공은 “쾅!” 소리를 내며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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