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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저주

  • gwachaeso
  • 3월 19일
  • 2분 분량

<주술회전>

후시구로 토우지 단문



‘타인을 저주하지 않고 일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세운 그 같은 가정을 따른다면 젠인 토우지는 타인을 저주할 수 없도록 태어난 사람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었다. 본인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표현이긴 하다만 저주의 동력을 주력으로 본다면 그는 타인을 저주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채 태어난 사람이었다. 천여주박에도 종류가 있거늘 하필 태어나기를 젠인 가에서 태어났으면서 주력 한 방울 나지 않는 마른 유전으로 살기를 점지받다니. 저주할 순 없어도 저주받을 순 있었다, 당연히. 동시에, 타인을 저주하지는 못할지라도 해할 수는 있었다. 아주 쉽게. 엄연히, 그리고 면밀히 볼 필요도 없이 둘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타인을 저주하지 않고 일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그 명제는 누가 세웠나? 앞선 명제가 참이라면 저주가 주력으로 발동된다는 전제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 앞선 명제가 거짓이라도 젠인 토우지가 타인을 저주하지 못한다는 말은 거짓이리다. 그야 주력으로 저주한 것은 없겠지. 다만 사람은 그 외의 것으로도 능히 저주받을 수 있는 나약한 존재이고 이 세상에 저주받을 수 있는 존재는 사람으로 한정되지 않기에, 젠인 토우지는 일생 살면서 수많은 것을 저주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자랐다고도 볼 수 있겠다. 자라며 그는 젠인 가를 저주했다. 천여주박을 저주했다. 하늘을 저주했고, 죽음을 저주했다. 그리고, 그러다 그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 그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진 순간에.


더는 젠인 가가 그를 저주하여도, 천여주박이 그를 저주하여도. 하늘이 그를 저주하고, 죽음이 그를 저주하여도. 의미가 없기에 그는 자신이 자유로워졌다 느꼈다. 자신의 의미도 사라졌기에 자유의 의미도 곧 사라졌지만 이제는 무엇도 그를 저주할 수 없었고 곧 무엇도 그를 해할 수 없었다. 저주할 수 없는 것과 해할 수 없는 것이 다른 범주를 가지든 말든 그는 상관하지 않았고 이윽고 상관없는 존재가 되었다.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평행선이었다. 그는 저주와 평행했다. 실은 외줄타기를 하는 자의 균형과 같았지만 그에겐 줄에서 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최후에는 그 역시.


떨어지는 순간에 눈에 든 것이 있었으니 토우지는 그것을 면밀히 볼 것도 없이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누구인지도 알았다. 토우지가 바로 안 그것은 과묵했으니 말이 없는 까닭도 그는 알았다. 입가에 난 상처가 벌어질 때마다 아팠기 때문이다. 입 속에서 일컬어진 모든 저주에 소리가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


세상에. 타인을 저주하지 않고 일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본인을 저주하지 않고 일생을 견디는 사람도 없다. 일생을 저주하지 않고선 살고 견디고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은 있다. 최후까지 떨어지지 않을 순 없었을 것이다. 저주를 저주하지 않고 견딜 순 없었을 것이다, 그 역시. 왜냐면 일생이 그를 저주했으므로. 나기를 저주받은 집에서 태어나 죽음을 합한 모든 것이 그를 저주하였으므로.


그러나, 그래서. 그에게 남은 모든 것이 저주받았냐고 한다면 아직…….


저주를 저주하며 이름한, 일생에 남긴 이름이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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