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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백년해로

  • gwachaeso
  • 3일 전
  • 3분 분량

<HQ!!>

오이이와

꿈 이야기



백 년. 백 년은 나와 함께해줘야 해. 코흘리개 시절부터 셈하면 이십 년을 친구로 살아온 녀석에게 받은 고백에 남은 팔십 년의 인생이 저당 잡혔다. 내 외사랑은 길었으므로 머리가 희어지고 나서도 함께하자는 요구가 나는 퍽 반가웠고, 무리라는 핑계로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자는 대답에 이미 가장자리가 붉은 너의 눈은 내일까지도 부기가 빠지지 않을 성싶었다. 나는 너를 안았다. 어린 날 그랬듯이 너의 등을 통통 두들기며 투박하게 너를 달랬다. 엉거주춤 안긴 너 역시 내 등 위에 팔을 올렸고, 그 뒤로 우리는 칠 년을 꼭 그때같이 행복하게 살았더랬다. 남은 건 칠십삼 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남은 칠십삼 년은, 그러게. 어쩌면 좋을까. 칠십삼 년의 첫 하루, 나는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모르는 세월을 안은 채로 너 없는 세상에 혼자 놓였다. 이제 뭘 하면 좋지? 뭘 하면 행복해지지? 지금 당장은 답이 없으나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지면 답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앞으로 칠십삼 년 동안 계속 이런 채로 유지될 예정이란다. 시간이 흘러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거란다. 나는 막막함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어이. 먼저 함께해 달라고 한 건 너잖아. 공수표만 날리고 또 어딜 간 거야? 순간 사위가 조용해져 고개를 돌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 몸을 돌렸다. 신을 신고 향냄새가 영원히 빠지지 않을 것 같은 그곳에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아무도 날 붙잡지 않았다. 붙잡으려다가도 다른 이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그래도 나는, 나는. 누가 날 붙잡아주길 기대했던 것 같은데. 그렇지만 ‘아무나’가 아니야. 누가 붙잡아주길 바라는지 나는 너무나 명확하게 알고 있어. 얼마 가지 못하고 멈췄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빠른 발은 생각보다 먼 곳으로 나를 옮겨놓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공원 귀퉁이에 있는 작은 놀이터. 누군가 비어 있는 두 개의 그네를 보고 있는 내 소매를 잡아끌기에 나는 그곳으로 시선을 내렸다.


백 년.


코흘리개 시절의 작은 네가 있었다. 네가 말했다.


함께해줘서 고마워.

안녕.


그제야 나는 우리가 함께한 칠 년이 오래전 약속한 백 년의 마지막 칠 년인 것을 알았다. 눈을 감았다 뜨니 그 모든 게 꿈이었다. 나는 칠 년 하고 하루째 되는 날의 네가 내 앞에 누워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칠 년을 하루 같이 웃은 네가 내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안녕. 좋은 아침. 내 꿈 꿨어?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손을 뻗어 너의 뒤통수를 끌어당겼다. 네 머리를 내 어깨 위로 올리고 아침 기지개를 켜듯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기차만큼 긴 한숨을 내쉬며 숨을 뱉는다. 내 꿈 꿨구나. 키득거리는 목소리는 어린 날과 꼭 같다. 어린 날의 너부터 오늘날의 너까지 나는 내가 보아온 너의 날을 모두 기억하고 있기에 비교하는 것은 참 쉽다. 어떻게 알았냐. 잠긴 목소리로 대꾸하면 제가 모를 리 있겠냐고 아침부터 기운 좋게 떠들어대기 시작하는 너. 나는 그런 너를 가만히 끌어안고 손에 감기는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쓸어내리며 현실에는 있을 자리 없는 꿈을 저편으로 몰아내 버린다. 아침의 첫 일과로 이만하면 손색이 없고, 그동안 품에서 벗어나지 않은 너 역시 너와 비교하면 짧고 억센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하루의 시작을 즐긴다.


무심결에 물었다. 너 언제까지 나랑 이러고 살래. 손이 멈추고, 머리에서 내려간 손이 어깨를 눌러 오롯이 정면을 올려다보게 된 나를 몸을 일으킨 네가 내려다보는데, 내 질문의 의도를 읽으려는 네 눈은 네 머리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사이 어쩔 수 없이 깜박일 때를 제하면 모든 순간에 오로지 나만을 네 시야에 담고, 깜박임에 털어내고, 다시 담았다. 입이 떨어지고 대답이 들려왔다. 백 년.


함께해줄 거지? 고마워, 하지메쨩.

공수표 날리기는.

진짠데.

그럼 앞으로 몇 년 남은 거지. 팔십 년?

무슨 소리야.


백 년. 백 년이 다 지나기 전에 또다시 백 년. 백 년에 백 년을 거듭하며 우리는 함께할 것이고 마지막은 영원히 연기되며 무기한의 사랑만이 너와 나 사이에 함께 놓일 것이다. 네 대답이 흡족하여 나는 눈을 감았다. 얕은 잠을 잔 내게는 잠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곧 다시 잠드니 꿈은 이어지지 않았다. 꿈 없는 깊은 잠을 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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