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실애

<HQ!!>

오이카게

고백하지 않은 첫사랑

사랑받지 못한 적은 있어도 연애에 실패한 적은 없었다. 시작하지도 않은 것에 실패를 논할 수는 없으니 나는 단 한 번도 실연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사랑에 빠진 적도 없는 삶이겠고, 살면서 언제나 최고의 것만을 손에 쥐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은 어린애도 알았다. 좀 더 그런 희망 속에 살아도 괜찮을지 모르는 어린애한테도 세상은 자비 없이 다가가기 일쑤다. 희망의 철자를 지우고 그 위에 덧쓰는 건 착각의 획이다. 그건 희망이 아니야. 착각이야, 하고 실상은 희망 위를 덮어씌우면서 마치 진실을 한 꺼풀 벗겨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아직 애잖아. 착각 좀 하며 살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래도 되는지, 무엇이 정답인지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는 교육자의 길을 걷진 못할 것이다. 가르치는 데 재주가 없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기에 새삼 체념할 일은 되지 않는다.

내가 사랑받지 못할 적에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면 당신이 내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당신에게서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당신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당신의 입으로 내게 직접 말해주는 당신. 네가 싫어. 고백하기도 전에 거절당하는 건 양심적으로 노 카운트지. 당신에게 고백했다면 나는 사랑받지도 못하고 연애에도 실패한 사람이 될 뻔했다. 그렇게는 되지 않은 나다.

만약 당신이 나를 조금만 덜 싫어했다면 나는 당신에게 고백했을까?

당신은 고백을 받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내게 사과했을까? 만약 당신이 지금보다 나를 조금 더 싫어했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지금보다 나를 조금 더 싫어하고 그럼에도 내가 당신에게 고백했다면, 당신은, 그렇게 듣고 싶은 대답이라면 절대 해주지 않을 거라고 내게 어깃장을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지금보다 나를 조금 더 싫어했다면 나는 당신을 좋아했을까?

만약 당신이 지금보다 나를 덜 싫어하고 내가 당신에게 고백했다면 당신은 어땠을까.

딱 조금만 더 싫어해 줄 것이지. 아니면 딱 조금만 덜 싫어해 줄 것이지. 그랬다면 나는 당신을 조금만 더 좋아하고, 조금만 덜 좋아했다가, 결국엔 어떻게든 놓아버렸을 것이다. 지금처럼. 달라질 것은 없나. 달라지는 일은 결국 없었을 것이다. 달라지는 사람도, 달라지는 첫사랑도. 나도, 당신도.

그러나 나는 아직도 사랑받지 못한 적은 있지만 연애에 실패한 적은 없다.

고백하는 순간 잃게 될 기회를 나는 아직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