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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영구기관

  • gwachaeso
  • 3월 18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9일

<올드보이>



복수심은 영구기관의 동력원으로 사용되기 어렵지만, 잠시간의 전원 공급원으로는 이만한 것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 동력원이 무한한들 기관의 다른 부품이 그를 받치지 못하니 다시 말해 무한한 동력원은 없으며 영구기관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전 생물 교사는 인체모형도를 가져와 학생들에게 그들을 이루는 장기 모형을 들여다보게 했었다. 세포가 모여 조직을 이루고 조직이 모여 기관을 형성하며 기관이 모여 기관계를 조직한다는 설명이 곁들어졌으나 소년의 머릿속에선 겉돌기만 한 지식이었다. 이 장기 중 영구한 것은 하나도 없으리니 소년에게 내장된 내장 또한 그러하리다. 교실 안의 모든 이의 내장 또한 그러하리다. 그 수명에 조금 차이가 있으리란 것까지 아는 이는 그 자리에 없었으나, 소년에게 전조가 있었는지 그 여부 또한 이 자리의 이들에겐 불명하리니, 또한, 반복되는 또한, 소년의 손바닥에 땀방울을 송골송골하게 맺히게 하는 이 또한 이 자리엔 없었다. 이 세상에 영구한 것은 없다. 사랑 또한 그러하리란 것도 머릿속으로는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랑이 입히는 상해 역시 그러하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영구한 것은 없으므로. 상해 입은 몸뚱어리부터가 영구하지 않을 것이므로.


교실 안의 소년이었던 남자가 복수심을 조직하는 동안 그의 기관들은 서서히 망가졌지만 단 하나 뇌에는 전원을 공급하는 데 문제가 없어 다행이었다. 전극을 붙인 심장이 쿵쿵 딸깍, 쿵쿵 딸깍, 소리내는 동안 조직된 복수심은 계를 이루고, 세계를 이루고, 그 안에 모든 것을 집어넣고, 모든 것을 닫아 여민 인체 모형도처럼 근사한 모형으로 완성되지만 이 또한 영구하지 않을 것을 남자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원을 넣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이 또한 사람이라 결국엔 망가질 것을 알면서도 기관을 작동시키고, 작동시킨 기관에선 관을 따라 소리가 쿵쿵 울리고, 오래전 계단을 오르내리던 어느 소년의 귀에도 파이프를 연결한 것 같이 전달된다. 쿵쿵, 딸깍이 아니지. 찰칵. 찰칵이지. 쿵쿵,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는 삼차원의 현실을 이차원의 사진으로 투사한다. 그러나 이 또한 영구하진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바래고 바래어 바라던 형체까지 흐릿하게 흐려져 버리고 만다. 투시하는 소녀를 투사한 사진을 남자는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시선의 동력은 언제까지 사랑에서 나오지는 못하였다. 사랑인들 무한하랴. 무한한 것은 없었다. 기관이 동작을 마칠 때까지만 동력을 공급하면 그만인 동력원으로는 복수심이 훌륭했다. 유망하고, 유력하고, 유익했으니 유감없이 멈춘 기관들이 작은 네모 상자 안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동안 이, 몸뚱어리를 굴리기 위해 동원했던 소집 명령은 이제 해제되었으니 장기 이하 조직들은 이제 마음대로 하시라. 잠시간의 원동력으로는 충분했으니 기관보다 먼저 소진된 동력원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영구기관은 결국 없었음이다. 터져나간 뇌에서도 전원이 꺼진다. 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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