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 to you
- gwachaeso
- 3월 28일
- 6분 분량
이름이 세 번 불리면
폭력적인 묘사 주의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한시도 서로의 품에서 멀어지지 않았던 우리 사이가 만 리 길 떨어질 줄이야 꿈에서도 알지 못했다. 세상살랑 모두 잊고 노닐다 벌을 받은 천상의 연인들처럼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부르지 못하고, 다정히 속삭이던 이름을 듣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리하여 어떤 향이 코끝을 간질였는지 나날이 잊어가는 괴로움 속에 나 혼자서 살게 되었다. 내가 울어도 너는 내 눈물을 닦아주지 못한다. 나는 내 젖은 뺨을 가로질러 턱 끝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혼자 내려다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혼자가 되어 너 없는 세상에서 더는 우리일 수 없는 나에겐 한없이 버거운 삶을 살게 되었다. 나 혼자 살게 되었다.
네가 없는 이 땅의 공기는 지독하게 무거워 내 어깨를 있는 힘껏 짓누른다. 네가 없는 네 자리는 내 기억에만 남아 그 위에 가볍게 내려앉은 먼지가 벌써 엄지 높이만 하다. 나는 이따금 기억 속 네가 겹쳐 보이는 장소에서 발을 멈췄고, 우리가 입 밖으로 꺼낸 적 없어도 약속한 것처럼 마주쳐 온 장소에 혼자 남겨질 때면 목 놓아 흐느꼈다. 네가 이 소리를 듣고 나를 찾아와 주기를 바라지만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으리란 걸 사무치게 깨달을 때면 그렇게 너 없이 보낸 하루만큼 나를 미워하며 살게 되었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질 때면 나는 혹시나 네가 서 있는 걸까 싶어 바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내가 마주한 건 네가 없는 현실 그 이상 이하도 되지 못했다. 나에게 네가 없는 삶이란 그런 삶이다.
나는 네가 천진하게 웃던 모습을 떠올린다. 너와 내가 막역한 사이가 되기 전부터 너의 웃음은 내게 이 세상에 아직 희망이 남아있음을 가르쳐주었다. 너를 만나기 전 때때로 내일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내 앞엔 아직 다가오지 않은 수없는 날들이 날을 세워 서 있었다. 오지 않은 날이 품은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동시에 먼지만큼이나 작고 무게가 없어서, 오히려 시퍼렇게 세운 날밖에 보이지 않아서, 나는 하늘로 도망가려는 풍선 끈 하나만 잡고 있어도 나를 전혀 지탱해 주지 못하는 이 땅의 중력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숨 막히는 이 땅을 벗어나 나를 괴롭히는 것들에서 벗어나 고독 속에서 홀로 살 수 있다면 괜찮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종종 품었다. 그렇게 내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조각들을 버리려 할 때 내 앞에 나타난 네가 있었다. 내가 몰래 흘린 눈물 자국을 보고 쫓아와 내가 떨어뜨린 조각들을 주워 온 너는 아직 아니라며 내 품에 내가 버린 그것들과 안겨들었다. 내 손을 잡고 가장자리에서 나를 잡아당겼다. 돌아본 하늘이 무척이나 맑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로 젖어 든 내 얼굴을 문질러 닦는 네 손길은 따듯했지만 나는 네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음을 그때 단박에 깨달았던 것도 같다. 이 세상에 이런 고독을 끌어안고 사는 자가 나 혼자만이 아님을 알려 준 너는 하늘 아래 가장 잘 어울리는 청명한 미소를 지으며 울고 있었다. 너는 난간 아래로 고꾸라지려 했던 나를 잡고 놓지 않았다. 옥상은 우리가 처음으로 서로를 제대로 마주한 장소였다.
그 뒤로 너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너와 처음 만났을 때 죽고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너와 마주하기 전의 전생은 이제 흐리고 분명치 않았으며, 다시 세상과 마주했을 때 내 눈에 처음으로 오롯이 담겼던 너를 따랐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새가 처음 본 대상에게 각인되듯 나는 너를 쫓으며 내 모든 것과 나의 생명줄을 너에게 의존하며 대리하도록 했다. 너 없이 살지 못할 존재처럼 너에게 매달리며 부족한 숨을 헐떡이며 자비를 간구하니 자비로운 너는 나를 내치지 않고 전생에서부터 내가 줄곧 바랐던 온전하고 흠 없는 애정을 부어 주었다. 만약 네가 나를 한 순간의 공감과 동정과 도리로 구한 것이 전부라 이후의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분명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네가 구한 삶에 책임을 지고 나를 돌봤고, 내가 오로지 너에게만 충성스러운 종이 되었듯 너는 나의 갈급한 영혼을 굽어살피는 위대하고 자애로운 신이 되었다. 네 품 안에 만족스럽게 기대어 잠든 나를 볼 때마다 신이자 내 모든 것인 너는 무엇을 느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네가 네 오른 어깨 위에 턱을 기대고 두 팔로 휘감아 밧줄처럼 너를 구속하듯 매달린 나를 볼 때마다 느낀 감정이 사랑과 비슷한 것이었는지 너는 알려주지 않았다.
한 번 너를 -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너는 난처한 미소를 짓다가 그래도 내가 이렇게 짓궂은 농담을 한 번씩 던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며 엷게 웃었다. 나는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었지만 너의 말을 바로 잡진 아니했다. 내가 너를 -처럼 여기게 된 연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기에 너를 놀리기 위해 꺼낸 단어가 아니라고 변명하길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한순간 갑작스럽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단어에 당황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두 번 다시 너를 -라고 부르지 않았다.
희망 없는 무자비한 세상에서 오로지 네 안에서만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서 스러진 감정과 빛과 아름다움이 살아 숨 쉬었다. 순수가 사라진 세상에서 너는 유일하게 나와 함께해 준 빛이었다. 내 모든 것이 너에게 달려 있었는데 그런 네가 내 곁을 떠나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네 품에서 영원히 너와 헤어지지 않을 줄 알았던 나에게 갑자기 들이밀어진 현실은 냉혹했다. 오랫동안 유순한 것만을 입에 문 자가 갑자기 입 속에 처넣어진 딱딱하고 한기 서린 현실을 냉큼 삼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의 유년기가 끝이 났다. 너의 죽음과 함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기에. 영원은 너와 나 사이 오직 우리의 유대에만 함께할 수 있는 단어지 상실에 붙일 단어가 아니었다. 너는 내가 너의 상실을 견딜 수 없으리란 걸 알았을 텐데도 나를 떠나버렸고, 나는 그 사실에 분노하다가도 이제 내게 빛바랜 사진처럼 추억으로 변해 갈 너를 떠올리면 곧바로 눈물로 용서를 구하며 잘못을 빌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너와 함께 행복했던 나날의 기억뿐이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너의 상실을 강조하는 잔상들 탓에 그것들마저 온전히 사랑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나에게 남은 것이 그것뿐인데도. 고통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를 구원할 방법을 찾았다. 너는 구원이란 단어를 좋아했다. 나와 달리 신앙을 가진 너는 조용히 손을 모아 신께 기도를 올리곤 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 들려오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묵묵히 기도를 계속하는 네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으면서 한 번도 너를 따라 기도한 적 없었던 나는 너를 잃고서야 신 앞에 나아갔다. 네가 했듯이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오랫동안 신을 경멸해 온 나를 이렇게나 변화시킨 건 너니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너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달라고, 너를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더는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는 너의 가슴이 뛰는 모습을 보게 해달라고, 만약 그리 해준다면 영원히 당신의 존재를 의심치 않고 따르겠다고, 당신이 나의 신이 되리라고. 눈물을 쏟으며 간청했다. 그러나 신은 전생의 내게 그러했듯 무관심했고 내게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했으니 너 없는 삶의 의미가 없음을 일찍이 알았던 나는 이제 네가 가르쳐 주었던 희망이 모조리 사라졌음을 느꼈다. 사실 너만이 내 희망이었기에.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받아 주었던 너를 잃은 순간 내 앞의 모든 세상이 빛을 잃고 독에 잠긴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네가 믿던 신께 의지해 본 것은 나에게 너는 신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닮은 모습을 기대하고 나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너는 오직 너였다. 그리고 내 전부였다.
하늘이 흐렸다. 한때 너로 인해 내가 다시 태어났던 옥상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처럼 나는 그때와 다름없이 혼자 그곳에 서 있었다. 나를 쫓아 달려올 네가 없기 때문에 계속 혼자일 그곳 가장자리 가까이에 서서 난간을 붙잡았을 때, 마치 네가 내 이름을 소리치며 나를 잡아당겼던 순간에 반짝이던 빛처럼 구름이 걷히고 눈부신 하얀 빛이 나를 내리쬐었을 때. 네가 믿는 신은 역시 거짓이었어, 하고 난간 아래로 허리를 숙이려던 그때, 악마가 속삭였다. 무심코 너를 -라고 불렀던 그때처럼 나는 중얼거렸다.
내가 신이 되면 되잖아.
내 스스로 나의 신이 되어 너를 되살리면 되잖아.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지만 네가 죽은 후 나는 줄곧 내가 미련 가지지 않은 만큼 나를 붙잡지 못하는 세상을 부유하고 있었다. 중력도 나를 붙잡지 못하는데 고작 너 하나를 되살리는 일이 말도 안 되는 발상일까. 나는 사랑하는 너를 내 힘으로 되살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모든 것들이 해결되었다. 너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내 삶에 너를 돌려놓는 것으로 정하고 나자 네가 죽은 후 처음으로 온 마음이 저릿할 정도로 기쁨이 차올라 눈꼬리에 눈물이 맺힐 만큼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거무죽죽한 세상도 환희로 가득 차 찬란하게 빛나고 천사들이 부는 나팔 소리에 만민이 환호하는 듯했다. 왜냐하면 이제 이 세상은 네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너를 되살리기 위한 재료로 가득 찬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계단을 몇 단씩 뛰어 내려가며 내 눈앞에 선한 너를 벌써 다시 만난 것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럴 것이다. 잠깐의 이별은 있었어도 영원한 헤어짐은 없을 것이다. 영원히.
영안실에서 훔쳐 온 너를 수술대 위에 눕히고 나는 메스를 들었다. 부패한 조직을 절개하고 신선한 장기를 이식하고 찢어진 부분을 꼼꼼히 꿰매며 그 안에 틈틈이 너를 향한 내 사랑으로 빈자리를 메워놓았다. 수없이 많은 시도와 실패가 쌓여갔다. 소모된 재료의 잔재를 소각하며 네가 내 곁으로 돌아오려면 백 년 정도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백 년만 기다리면 네가 내 곁으로 돌아오겠구나 싶었다. 그동안 다시 썩어간 너의 팔다리를 떼어내고 포르말린에 담근 뇌를 꺼내며 그리하여 완성된 너에게 전기 자극을 흘려 넣은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성취감에 도취하였다.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건 너였다. 나의 신, 그리고 이제 내가 너를 다시 되살려냈다. 완벽히. 이제 내가 너의 -가 되는 것이다. 너와 나는 완벽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것이다. 오늘. 지금.
이름이 세 번 불리면 네가 눈을 떴다. 나는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인 채 너에게 속삭였다.
"내가 널 살렸어."
내가 널 구했어. 이제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는 거야. 이제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되는 거야. 다시 행복해지는 거야. 영원히. 그러니 더 이상 죽음으로 도망치지 마. 더는 내 곁을 떠나지 마. 그리고 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나를 죽였어……."
아니었다. 단지 영원히 너를 독점하고 싶어 한 나를 밀쳐 내고 도망간 네 앞에 낭떠러지가, 도랑이, 절벽이, 건설자재가, 부서진 난간이, 트럭이 있었을 뿐. 나는 웃으며 네 말에 대꾸했다.
"무슨 상관이야?"
우리는 그저 영원히 함께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