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비자림

Good morning, your grace

  • gwachaeso
  • 3월 21일
  • 3분 분량

<WT>

나스쿠마



눈꺼풀 안까지 스미는 빛은 오전, 아침의 햇빛이었다. 유리창을 통과하고 반투명한 블라인드를 한 차례 거치는 동안 날이 깎여 눈을 찌르는 대신 눈꺼풀을 두드리는 빛이었다. 이대로 그들의 노크를 듣지 못한 체하고 눈을 뜨지 아니하면 몇 시간이고 이어 잠들 수 있을 테지만, 눈을 뜬 순간, 다시 말해 깨어났음을 자각한 순간 유코는 벌떡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을 만큼 스스로에게 솔직했더랬다. 지난밤 잠드는 줄도 모르고 잠들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노곤하고 평화로우니 저항할 수 없이 내려오던 눈꺼풀과 이에 감기던 눈을 기억하고 있었고, 품에 안은 이의 온기를 좀 더 제 중심에 두고자 바투 끌어당겼던 자신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이는 지금 어디 있는가. 유코의 베개 옆에 바로 놓인 베개에 머리를 두고 오른편, 다시 말해 유코가 있는 방향으로 기울인 채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레이. 유코는 속삭이지 않은 이름을 입 속에서 가라앉히며 다만 그 위로 몸을 기울여 그를 그늘로 덮었다. 시계를 확인하지 않아 지금이 몇 시인지 시각은 알 수 없었지만, 이 아이의 잠보다 이르게 준비되어야 하거나 우선이 되어야 하는 일정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유코에게는. 아마 레이도 그렇지 않을까? 일단은 휴일이고, 그러니까. 좀 더 게으름 피워도 괜찮을 성싶었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지금 이 순간인 채로 이어가고 싶었다. 잠든 레이의 얼굴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싶었다. 아무 근심 없이, 구김 없이, 흠 없는 조각상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아름다운 것을 내려다보는 기분으로…….


그렇다면 경건해야 하건만.

귀하고 귀한 것을 진정 귀하게 여겨야만 하건만.


잠든 레이를 내려다볼수록 잠들기 전 레이를 떠올리고 마는 유코의 얼굴은 어느새 지난밤, 초입에 들어선 그때처럼 붉어져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밤의 장막이 그들을 감싸고 있어 서로의 숨을 나눠 가질 만큼 바싹 얼굴을 붙인 그들 외에는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자 없다 자부할 수 있었는데, 오전, 아침의 햇빛에는 이러한 은신의 속성이 없었다. 그들은 밝혀낸다.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유코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혹여 레이의 잠을 깨울까 속삭이는 것조차 삼가는 유코 대신 유코의 귀에 유코만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다시 말해 모든 크기의 소리로 속삭인다. 숨지 말지어다. 숨기지도 말지어다. 너 역시. 아, 물론 유코 또한. 유코 역시 숨거나 숨겨질 생각 따위 추호도 하지 않고 모든 것―정말로 모든 것―과 정면으로 대면하여 직면할 각오를 다지기는 했었다. 언제? 지난밤에. 그렇지만 말이다. 그래도 말이지. 사람이라면 밤의 요 안에 은밀히 숨기고 싶은 것이 하나쯤은 생기는 법이었다. 아무에게도 내어주지 않고 보여주지 않고 정말로 귀하고 귀하여 제 눈에만 띄도록, 제 품에만 안기도록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가질 수 있는 법이었다. 지난밤 같은. 그래, 지난밤 같은. 앞으로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를 잊는 날은 오지 않겠구나 감히 짐작하고 감히 자랑하고 내세운 지난밤 같은. 레이와 처음으로 입 맞춘 지난밤 같은. 지난밤에.


유코는 침대 아래에 있었다. 레이는 침대 위에 있었다. 유코는 고개를 들어 올리고 레이는 아래로 숙여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게 했다. 처음으로, 난생처음으로.


그것은 유코의 첫 키스였다. 레이에게도 그러한지는 알지 못하나 그런 걸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유코의 머릿속은 차분히 정돈되지 못했다. 덕분에 유코는 첫 키스에 실례될 생각에서 완벽히 회피한 채 오롯이 그 순간에, 그 환희에 오롯하게 놓일 수 있었다. 사실 그때는 환희 같은 단어야 떠올리지도 못했지만. 제가 느끼는 감정을 문장으로 명확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도화지에 물감을 흩뿌린 상(像)으로, 포착한 순간의 인상으로 기억할 양으로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무엇이 후일에 기억을 반추하기 더 좋은 방법인지 방법론을 논할 때는 아니었다. 그 순간 무엇을 논한다고 하면 레이 외 다른 것을 논할 수도 없고 논하지도 못할 터였다. 모든 것을 레이와 연관시키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 첫 키스도. 레이와의 첫 키스도. 아, 물론.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자신은 레이와 사귀고 있고, 손을 잡고 포옹하는 등의 신체접촉도 꺼리지 않고 해내곤 했으니 언젠가는 입, 맞춤도 하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하고. 솔직히 말하면 올, 줄만 알았다. 출장으로 집을 비우시는 부모님을 안심시키며 제가 곁에 있으니 괜찮다고 잠옷을 챙겨 레이 집으로 건너오는 날은 일상과 같았으니 다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누는 대화. 성인이 된 그들 앞으로 펼쳐진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대화.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함께할 것을 의심하지 말라 속삭일 필요는 전혀 없는 대화. 왜냐하면 그건 기정사실이니까. 기정한 사실이니까. 누가?


우리가. 그런 뒤 조금 지나 그들의 입술이 맞닿았다. 그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그럼 소리도 없었나? 그런 건…….


오전, 아침, 환한 아침 햇살 아래 유코의 얼굴이 확 붉어지니 레이에게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오전, 새벽, 오로지 그들만이 이 집에 있었을 때 유코의 턱을 잡은 레이가 유코의 귀에 속삭였다. 쿠마. 올라올래? 그에 유코는 뭐라 대답했는가. 아니. 뭐라 대답했겠는가? 당연히.


응. 빼꼼히 열어둔 창 너머로 새가 짹짹거리며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니 눈꺼풀 위로 내려앉는 햇빛은 손차양으로 막아주어도 소리는 막아줄 방법이 없어 결국 레이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 말은 다시 말해 지난밤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던 유코가 다시금 레이를 내려다보고 있었음을 뜻하고, 레이에게 어떻게 아침 인사를 전할지 이젠 정말 정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하여,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정해진 아침 인사는 지난밤과 다소 수미쌍관의 구조를 이루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조용히, 소리는 있지만, 작은 소리로. 목 울리는 소리의 인사는 그 뒤에야 이어졌다. 좋은 아침이야, 쿠마. 너도, 레이.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