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이름은 조부가 지어주신 것이었으나 정작 그 조부는 남의 집 조상이 된 지 오래라, 그래도 그 입에 한동안 풀칠은 마르지 않게 해줄 것이니 정훈은 제 뿌리를 파낸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이 나쁘지 않으니 조밥이라도 밀어 넣어 주겠지. 조밥이 무어냐 몇 끼는 쌀밥도 차려놓을 것이다. 비록 해에 한 번 얻어먹으면 족해야 할 끼니지만 정훈은 그리 생각했다. 한 번 그리 생각하고 두 번은 생각하지 않았다. 제 입은 풀 쑬 찹쌀 한 되 없어 굶어야 했기에, 더는 팔아넘길 게 없는 이름이 한이 됐다. 정훈의 이름엔 더는 뜻이 없었다.
강산이 변하고 나라의 주인도 바뀌기 전 정훈은 하늘에게서 큰 상을 받았으니 하늘이 먼저 정훈의 뜻을 물었다. 정음의 정을 쓴다 아뢰니 세필 끝을 문 그는 네 앞으로는 이걸 쓰거라 하고 종이에 勳을 적어내었다. 그날은 하늘이 그 앞에서 두 번째로 선생의 이름을 언급한 날이니 --이 네게 목숨을 구걸하더냐? 묻던 날과 다르게 웃음 없이 물었다.
--이 너를 훈계하더냐?
그러나 내 너에겐 그 글자를 줄 마음이 없다.
퇴궐하며 생각하니 訓은 원래 그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뺏기고 만 그의 것이었다. 성은이 망극하다며 절을 올릴 조부는 제가 준 이름이 천이 내린 이름과 비교할 수 있겠냐며 그 좁은 오동나무 궤에서도 허리를 굽히려 들리라. 다음에 받을 이름은 없어도 정-은 그런 상념을 품는다. 다음엔 개정의 정을 쓴다 말하리라고. 제게는 과분한 정이라 고쳐 쓰길 원한다 말하리라고. 그러나 그에겐 요구할 수 있는 상이 없었다. 동시에 누군가가, 팔방으로 뻗은 팔도에서 나지막이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