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비자림

이름

  • gwachaeso
  • 3월 17일
  • 1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9일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정훈의 이름은 조부가 지어주신 것이었으나 정작 그 조부는 남의 집 조상이 된 지 오래라, 그래도 그 입에 한동안 풀칠은 마르지 않게 해줄 것이니 정훈은 제 뿌리를 파낸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이 나쁘지 않으니 조밥이라도 밀어 넣어 주겠지. 조밥이 무어냐 몇 끼는 쌀밥도 차려놓을 것이다. 비록 해에 한 번 얻어먹으면 족해야 할 끼니지만 정훈은 그리 생각했다. 한 번 그리 생각하고 두 번은 생각하지 않았다. 제 입은 풀 쑬 찹쌀 한 되 없어 굶어야 했기에, 더는 팔아넘길 게 없는 이름이 한이 됐다. 정훈의 이름엔 더는 뜻이 없었다.

강산이 변하고 나라의 주인도 바뀌기 전 정훈은 하늘에게서 큰 상을 받았으니 하늘이 먼저 정훈의 뜻을 물었다. 정음의 정을 쓴다 아뢰니 세필 끝을 문 그는 네 앞으로는 이걸 쓰거라 하고 종이에 勳을 적어내었다. 그날은 하늘이 그 앞에서 두 번째로 선생의 이름을 언급한 날이니 --이 네게 목숨을 구걸하더냐? 묻던 날과 다르게 웃음 없이 물었다.

--이 너를 훈계하더냐?

그러나 내 너에겐 그 글자를 줄 마음이 없다.

퇴궐하며 생각하니 訓은 원래 그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뺏기고 만 그의 것이었다. 성은이 망극하다며 절을 올릴 조부는 제가 준 이름이 천이 내린 이름과 비교할 수 있겠냐며 그 좁은 오동나무 궤에서도 허리를 굽히려 들리라. 다음에 받을 이름은 없어도 정-은 그런 상념을 품는다. 다음엔 개정의 정을 쓴다 말하리라고. 제게는 과분한 정이라 고쳐 쓰길 원한다 말하리라고. 그러나 그에겐 요구할 수 있는 상이 없었다. 동시에 누군가가, 팔방으로 뻗은 팔도에서 나지막이 묻는다.
한은 무슨 한을 쓰려는가?

더는 대답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뮤지컬 <곤 투모로우> ■의 얼굴을 정훈은 기억하고 있다. 정훈이 ■과 얽힌 사건은 정훈이 아직 귀로에 오르기 전 벌어진 일로, ■이란 이제 어디에도 기록된 바 없으되 행간 사이에는 남아있어 항간에 오르내리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을...

 
 
Ink

뮤지컬 <아가사> 아가사와 로이 이야기 아가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옳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가사는 편지를 쓰기 위해 마른 펜촉을 잉크 병에 담그는 짧은 순간 자신이 죽인 어떤 것을 기억해냈는데, 그것을...

 
 
형제들의 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단문 모음 과자 어려서 먹지 않은 단 과자에 커서 입맛이 도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러 멀리한 것은 아니니 꺼리는 까닭은 없었다. 다만 그에게는 소문난 구두쇠인 그의 아버지의 소문이 있었으니. 그러나...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