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k
- gwachaeso
- 3월 17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9일
뮤지컬 <아가사>
아가사와 로이 이야기
아가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옳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가사는 편지를 쓰기 위해 마른 펜촉을 잉크 병에 담그는 짧은 순간 자신이 죽인 어떤 것을 기억해냈는데, 그것을 그것이라고, 사물과 같이 표현한 까닭은 그날까지도 그가 그것을 표현할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가사는 그것을 존중하고자 했다. 부정형의 그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무엇이든 되어 아가사 앞에 나타났었다. 그것은 무엇이든 바랄 수 있었다. 그것에게 한계란 없었다. 유감인 것은 그것이 항상 아가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바랐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가 요소이기에, 다시 말해 그것이 그것의 본질이기에 그것으로서도, 아가사로서도 이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할 수 있었다. 옳지 않은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가사는 그것에게 다른 이름을 붙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그것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게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웃으며 정답을 말해줄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아닌 자신이다. 자신이 될 수 없어서 죽어버린 아가사다. 더 큰 살의에 꺾여버린 살의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을 존중하여 스스로 붙인 이름을 말해주리다.
로이.
누가 살의에 왕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일 생각을 했을까. 참으로 오만하기 그지없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아가사 앞에 처음으로 나타난 날에 그것은 아가사의 꿈속에 똬리를 틀었다. 꿈이란 무의식 속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기에 아가사가 의식하지 않는 한 그것은 무한한 권능을 가진 것과 다름없었다. 전능한 자는 전능으로, 그 존재만으로 제게 미운 자들을 거리낌 없이 지우곤 했다. 그것은 꿈이기에 가질 수 있는 전능이다. 꿈이기에 가능한 전지였다.
결코 현실로 넘어올 수 없고 넘어오지 못하도록 통제된 욕망에 활로를 열어준 건 다름 아닌 아가사 자신이었다. 왜 하필 그날 그가 나타났을까? 단순히 죽을 고비를 넘기는 와중에 꿈과 현실을 가르는 정신의 막이 얇아져서? 아니다. 아가사 바로 그가 다리를 놔주었기 때문이다. 미궁 속의 티파티. 아가사가 그것을 현실 위에 풀어버렸다. 미궁 속의 티타임. 아가사가 그것을 종이 위에 새겨넣었다. 종이 위에 놓여난 순간 그것은 검은 활자로 박혀 자신을 현현했다. 때는 바야흐로 아가사가 친애하는 가족과 지인들과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티타임을 준비하기 직전. 종이에 튀긴 잉크 한 방울에 독 한 방울이라면 아가사가 그 자리에 풀어놓은 독은 모두를 독살하기에 앞서 익사시키기에 충분한 양이리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나?
모든 일이 끝나고 시간이 흐른 지금 아가사는 그것이 가졌던 분노를 이해하면서도 애석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마침내 자신을 분노케 한 이들과 대면한 그것은 그들에게 분노하며 살의를 드러냈지만, 꿈속에서처럼 그들을 없앨 수 없었다. 현실에 놓인 순간 현실에 속박되고 만 것이다. 펜을 든 아가사가 결국 아무 짓도 하지 않았기에, 꿈쩍도 하지 않았기에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전능한 의지가 무능으로 처박힌다. 그는 티타임의 결말도 무엇도 보지 못한 채로 방치될 위기에 처했다. 그럴 수 없어. 그러면 안 되잖아. 분노해, 아가사. 나를 잊지 마, 아가사. 너를 잊지 마. 너의 분노를 잊지 마. 너의 살의를 잊지 마. 네가 풀어놓은 네 소설의 주인공을 잊지 마. 독을 잊지 마. 아가사를 잊지 마, 아가사. 나를, 너를, 그리하여 다시 나를.
그것은 애원에 가깝다. 애잔하게도 이것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것이 아가사에게 제 의지를 전할 수 있을 만큼 경계를 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또 마지막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그는 필사적으로 아가사를 붙잡았다. 아가사를 사로잡았다. 아가사에게 애원했다. 아가사는 그런 그를 연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왜 자신을 붙잡으려 드는지 알고 있다. 왜 자신을 사로잡으려 드는지 모르지 않는다. 왜 제게 애원하는지 이해한다. 왜냐면 그는 자신의 주인공이잖은가. 자신의 의지이며, 자기 자신이지 않은가. 분노한 아가사. 살의에 휩싸인 아가사. 모두 아가사, 아가사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 이해하지만 이해에서 그쳐야 할 나. 아가사.
타인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려는 자는 정의롭지 않다. 옳지 않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니 그와 자신이 들어 올릴 잔은 축배가 아니라 독배일 수밖에 없다. 자, 잔을 부딪쳐. 쭉 들이켜. 이만 사라져. 내가 이곳에 풀어놓은 나의 실수. 나의 잘못. 나의 의지. 이제는 내가 아닌 나. 로이. 나는 그냥 네가 웃었으면 했어. 네가 말한다. 나도 그냥 네가 웃었으면 했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고 그래선 안 되는 그를 위한 추도식을 열고 아가사는 그를 묻었다. 그는 다시 그것이 되고, 이 모든 기억이 펜촉을 잉크 속에 묻은 그 순간 아가사에게 돌아온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각설탕을 빼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듯이 그를 기억해낸다.
누구에게 쓰려던 편지였는가?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아가사는 고개를 들어 올린다.
악수를 청하자 손을 마주 잡고 흔드는 손. 이제 그것에겐 그때처럼 아가사를 몰아붙일 힘이 부재하다. 그저 존재할 뿐인, 그러나 그것만으로 족한 아가사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 그것을 다시 세상에 풀어놓는 날은 오지 않겠지만 미약하게 숨줄만 붙잡고 있을 뿐인 그것을 내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안녕, 로이. 오랜만이야. 인사하면, 그것이 속삭임에 가깝게 답하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 거의 들리지 않지만 아가사는 만족스럽다. 옳지 않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그것을 그저 품는 것이라면 언제까지라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어디에도 내보이지 않을 그것을 품는 것이라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한 품이다. 익숙한 어둠에 몸을 묻는다. 눈을 감는다. 고통받는 자의 지옥을 품은 아가사의 펜촉 끝에 매달린 검은 방울이 기어코 똑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잉크 병 속으로 떨어져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