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범람하는 밤
- gwachaeso
- 3월 17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9일
드라마 <괴물>
IF 남상배와 같은 결말을 맞이한 이동식
1
강이 범람하는 밤에 당신이 사라졌다. 당신의 휴대전화는 이튿날 물가에서 발견되었다. 수색견은 물 앞에서 더는 당신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나는 밤이 다섯 번 지나고 여섯 번째 아침에 발목을 담그고 서 있는 당신을 보았는데 당신은 강 한가운데에 서 있었고 달려간 나는 점점 물에 잠겨 들었다.
나는 강 밑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신은 그곳에도 있었다. 당신이 거품을 흘리며 내게 말하기 시작해, 나는 당신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숨이 모자랄 당신이 내게 물었다. 물에 빠진 물고기는 싫어해요? 나는 그런 꿈을 꾸었다.
그런 꿈을 꿨어요.
참으로 지독한 악몽도 꾸셨네요.
꿈인가요?
왜요? 꿈이 아니면 뭐겠어요?
당신은 왜 물에 젖어 있지?
명확한 건 어디에도 없다. 물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하는 방이다.
2
손에서 이따금 비린내가 났다. 물비린내이기도 하고, 피비린내이기도 하다. 냄새는 코를 스치는데 마른 혀가 달싹여 냄새의 맛을 본다. 물비린내에선 짠맛이 나고 피비린내에선 철 맛이 난다. 나는 당신이 싫습니다. 당신에게서 내 손에서 나는 냄새가 납니다.
“어느 냄새요?”
“둘 다요.”
3
노련한 형사는 물장구치는 소년의 발을 붙잡으려고 손을 휘적대던 날에 사로잡혔다. 물 튀기는 손가락. 힘껏 뻗으면 너머의 돌부리에 닿을. 그래, 너는 어디 있니. 느이 동생 손 잡아주러 갔니. 현기증이 인다. 물비린내가 인다. 갑작스러운 고함과 함께 물이 첨벙 인다. 누가 뛰어들었다.
미쳤어요?
형사는 물에 젖기만 한 산 사람의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남국의 바다처럼 푸르뎅뎅한 입술은 다만 떨릴 뿐으로 소원을 들어주는 듯하나, 당신은 왜 미치지 않습니까? 형사는 기대를 배반당한 질문에 답한다. 미치면 범인 잡기가 더 힘드니까. 죽이기는 쉬워지겠죠. 형사는 코웃음 친다.
다 아는 소리 하지 말아줄래요? 나는 광인의 틈바귀에서 소리 내 웃었다. 이 땅에 그를 사랑한 사람 중 미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어느 밤에 가장 큰 소리를 내며 미친 사람은 마지막으로 북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목이 그인 사슴의 동맥에서 쿵쿵 뿜어져 나오는 힘찬 북소리를.
4
당신의 목에 아가미가 벌어져 뭍으로 한 번 올라오지 않고 수면의 빛만이 당신을 어루더듬는 꿈을 꿨습니다. 희한한 꿈이네요. 그렇습니까. 지느러미는 보지 못했습니다. 심장은 뛰었습니까? 북소리는 없었습니다. 당신의 생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습니다. 나의 생이 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니? 네.
5
어느 낮에 잠수부가 당신을 찾은 뒤로는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저녁 당신을 낳은 목소리를 듣고 나는 그 자리에 도망도 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진묵아. 미안하다. 아무래도 보일러를 고쳐야겠다. 나는 상관없지만 동식이가 추울 것 같아. 보일러를 고쳐야겠다. 진묵아.
6
이른 봄은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추웠다. 남쪽은 여기보단 따듯할 것이다. 승강장에서 부산행 열차를 배웅했다. 그는 당신을 여기 두고 싶지 않아 했다. 허튼 생각 하기만 해봐. 그런 생각 안 합니다. 유재이 씨. 그는 나를 믿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 줄 알고 안 한데. 거짓말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7
물에 젖은 화약은 방아쇠를 당겨도 잘 터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방아쇠를 연거푸 당겨야 했다. 수사관은 나의 진술을 타이핑해 종이로 옮기고 다시 내게 건넸다. 종이 위로 물이 뚝뚝 떨어져 갓 인쇄한 글자의 잉크가 번졌기에 나는 말해야 했다. 글자 번집니다. 이동식 씨. 수사관은 혀를 찼다.
당신의 발은 오늘도 바닥에 잠겨 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보아온 평생 가장 긴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바라본 것은 당신의 발일 것이다. 뭍으로 올라온 당신의 발을 본 어린 순경은 혼절했다. 그의 누나는 그곳에 있어야 했기에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도록 지시했다. 나는 가지 않았다. 할 일이 있었다.
8
밤이 범람하는 강물 속에 당신이 사라지고 밤이 여섯 번 지나 일곱 번째 동이 트는 날에 나는 당신을 보았고, 당신도 나를 보았다. 피거품을 흘리느라 당신은 입이 막혔고 내게는 숨이 모자랐다. 물에 빠지기 전 물고기는 유언을 남기고 강 한가운데에 던져졌다. 홀로 남은 나는 지상에서 질식했다.
당신은 내게 말했다. 주원아. 하지 마. 나는 당신 앞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마에 댄 당신의 손은 축축하니 비린내가 났다. 이마에 묻은 피가 흘러내려 입술에 닿으니 짠맛도 나고 철 맛도 났다. 하지 마. 주원아. 안 할게요. 하지 않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범람하는 밤의 강에 당신을 던지고 당신의 휴대전화를 물가 옆 바위에 놓으며 나는 울었다. 마침내 일곱째 날이 밝고 내 손에는 당신에게서 맡았던 그러나 오늘날엔 나의 아비로 인한 비린내가 물씬하다. 당신이 내게 말한다. 나는 네가 싫다. 명확한 뜻에 나는 웃었다. 나도 사실 미안하진 않아요.
안식일이었다.
*
그런 꿈을 꿨습니다.
괴상한 꿈도 다 꾸시네요.
꿈인가요?
왜요, 현실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당신은 왜 물에 젖어 있는 겁니까?
밖에 비 옵니다. 차 위에 비닐 씌우고 왔어요. 이 집엔 차고가 따로 없어서.
그렇습니까.
그래요.
거짓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