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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날개를 주세요

  • gwachaeso
  • 3월 19일
  • 2분 분량

<주술회전>

스쿠나, 이타도리, 날개 이야기. 팬아트



호랑이의 어깨에 날개를 달았지만 그가 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대하지 않는다.


남자에게 달린 날개는 처음부터 깃털 하나 덮이지 않은 골조밖에 없었다. 그 골조엔 깃털도, 일말의 살점도 없었고 햇빛에 희어지도록 문지른 듯한 뼈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날 생각조차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날개뼈와 뼈 날개를 가진 남자에겐 나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창공이 이미 그의 것이므로. 대지가 그에 복속했으므로. 남자에겐 서두를 필요도, 달릴 이유도, 날아야 할 사유도 없었으므로. 그저, 사랑방에 앉아 부엌에서 내오는 요리와 찬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으로 영원히 살 붙지 않는 날개를 살찌울 기세로, 다시 말해 영원히 게걸스레 먹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이 뼈 날개 가진 남자의 삶이었다.


그리고 여기, 그와 다르게 수가 적어 성기게 얽히지는 못하나 그 뼈를 가릴 만큼의 깃털은 조금 자란, 어린 새와 같은 소년이 있었다. 골조가 보이지 않을 만큼만 돋아난 흰 깃털. 세찬 바람이 불 때면 깃털 한두 개 뽑히고 날아가는 것에도 아까워하며 신경 써야 할. 그러나 몇 안 되는 깃털로 꽁꽁 감싸 하늘을 날 준비를 하는. 도약과 비상, 그리고 그에 따른 올바른 하강까지. 기류를 타고 상승하는 법을 이제 겨우 익힌 어린 새 같은 소년이 있었다. 더 자랄 길 하염없이 많이 남은 듯한 소년이 있었다. 그리고 성장과 함께 돋칠 소년의 날개가―앞선 남자의 손에 쥐어뜯기는 것이다. 그딴 건 네게 필요 없으니 제가 제거해 주겠다는 선심―그런 것이 있을 턱이 없는 남자의 손에, 악심에, 그 털이 뽑히고 뼈의 뿌리가 뽑히고 뜯어지고 부러지고 남은 뼛조각이 살점에 박혀 그 주변을 벌겋게 만들든 곪든 말든 그딴 건 신경도 안 쓰고, 그저 으득, 으드득 소리를 내며 나무의 뿌리를 뽑듯 가로등의 주춧돌을 뽑듯 어린 소년의 어린 신경이 비명을 지르도록 사정없이 뽑는 남자의 손에, 파헤쳐지고 뜯어내진다. 날개가 뽑힌 자리에선 살이 뜯겨 피가 흐르고, 피가 치솟고, 엎드려진 채 구부러지는 손가락은 긁을 바닥조차 손에 닿지 않아 오로지, 오롯이 제 날개 뽑히는 고통만 선명하고 다른 고통으로 그걸 덮진 못한다. 그렇게 흐려지도록 두지 않는다. 그렇게 뽑아낸 뒤엔 무엇이 남을지, 치솟는 피가 뒷일을 연상케 하니, 그 자리엔 이제 골조가 골이 아닌 피로 이뤄진 날개가 돋으리다. 응축되어 검게 보이는 핏덩이의 가지가 어깨에서 뻗어 나와 허공에 뿌리내리듯 뻗어나가리다. 호랑이의 등에 돋아난 날개는 결국 그런 모양이 되리다, 하는 것이다.


그 뒤에도 소년은 말할 수 있을까?


날개를 주세요, 그래도 날개를 주세요, 라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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