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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사라지는 별빛 아래서

  • gwachaeso
  • 3일 전
  • 4분 분량

<HQ!!>

오이카게

백 년 약속!



너는 내게 혜성을 보러 가자고 말했다.


TV에서 백 년 만에 육안으로 관측될 만큼 가깝게 이곳을 지나가는 혜성에 관해 방송한 날이 바로 전날이었다. 감성을 찾는 건 언제나 내 몫이라고 생각했기에 네 입에서 나온 문장과 너는 퍽 어울리지 않는다고 다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몫을 찾아준 네 제안을 거절할 마땅한 이유도, 곧 당위도 없는바.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이면 새벽 기차에 몸을 싣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이렇게까지 순식간에 진행될 줄 모를 만큼 금방이었다. 혹 거절할까 봐 차표까지 미리 끊어왔단다. 목적지를 보니 나라 반은 족히 가로지르는 대장정의 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진심이야?”


우리가 기차를 타고 3시간이나 이동해야 하는 이유가 무어냐고 물었을 때였다. 이 기회에 바다에도 가고 싶었다고 대답하는 너는 참으로 솔직하였다. “우리, 바다도 같이 간 적 없잖아요.” 듣고 보니 정말이라 토를 달지 못했다. 그래도 더 가까운 곳으로도 갈 수 있었는데, 따위의 말도 이쯤 되면 눈치가 보여 꺼낼 수가 없었다. 네가 먼저 어울리지도 않게 별도 보고 바다도 보자는데, 내게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목적지에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만 내가 너를 존중하여 그런 것임을 나는 네가 알길 바랐다.


바닷냄새가 불어오는 역에서 짐을 내렸다. 우리는 목에 두른 목도리를 단단히 여민 후 겨울 바다가 시작되는 해안으로 발을 옮겼다. 부딪쳐 부서지는 포말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고, 뒤를 돌 때면 우리가 걸어와 남겼으며 돌아갈 길을 알려줄 발자국이, 겨울 공기에 단단히 얼어 무너지지 않은 것을 지켜보았다. 혜성은 날이 저문 후에야 이곳을 지나간다 하였으니 그 시간까지 우리는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다. 산책이라던가. 외투 안쪽까지 스며 차는 한랭한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산책이라니, 대화 한 마디 오가지 않아도 말이 필요 없는 사이라 그렇다고 너스레를 떨지 않아도 되어 좋긴 했다. 이 이상 과장할 것 따위 없는 사이였다. 위장할 것도, 가장해야 할 관계도 없었다.


“왜 갑자기 혜성에 꽂힌 거야?”


내키지 않을 만큼 다른 중한 볼일이야 없었지만, 그게 무엇이든 허용하지 않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네게 말문이 막혀 고개를 끄덕인 어제의 내가 졸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 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고개를 흔들며 ‘내가 왜?!’라고 소리쳤지만 때는 늦었었지. 노린 게지. 노린 게야. 노리지 않았을 리 없는 너는 내 말에 하늘 저 위, 수평선을 경계로 펼친 도화지 같은 하양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위에 시침핀으로 혜성을 고정하는 모습을 상상한 듯한 너는 입을 벌렸다가 이내 다물었고, 나는 너의 상상 속에서 누가 그리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 돌아올 대답을 가로막지 않았다. 잠시 후 공상과 달리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이 내게 돌아왔다. 너는 조금 퉁명스러운 기색을 함께 보였는데,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내겐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꽂힌 적 없는데요.”


오호라. 그래?


“네.”


근데도 새벽 5시에 첫차를 타자고 4시부터 나를 깨워?


“그건…….”


뻔했다. 혜성도 바다도 주는 아니라는 거겠다. 그 모든 건 결국 부가적인 것. 그렇다면 무엇이 주인지야 뻔하지 않나. 나는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걸 느끼며 뒤를 돌았지만, 네 빨갛게 달은 귀 끝과 코끝에 진정으로 기뻐하려면 일단 이 추위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란 걸 알았다. 자, 가자. 내가 먼저 네게 손을 뻗자 너는 놀라 허둥지둥하면서도 곧장 내 손을 잡았다. 뭘 그렇게 놀라? 심술을 부리려다 거기서 그친 까닭은 오는 길 내내 심통을 부리느라 한 번도 잡아주지 않은 손에 내가 선물한 장갑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손에 맞아서 애용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뭐. 이 정도로 만족하다니, 너는 정말 나한테 잘해야 해. 그러면 제가 뭘 했는데요? 또는 제가 또 뭘 해야 하는데요? 하고 반문할 게 빤한 너. 그러니까 내게 잘해야 한다고. 알겠어?


“새벽 3시에나 볼 수 있다는데 그때까지 잠들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나 모르겠네.”


너무 일찍 일어나서. 부러 의도한 것은 아닌 하품과 함께 말을 맺자 그제야 조금 심각해지는 네 얼굴이 재밌었다. 그러나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도 반쯤 감긴 눈을 이 이상 뜨지 못하는 나였다. 추위를 피해 들어온 근처의 카페는 따뜻하니 금세 몸이 노곤해졌다. 정말로 밤을 새울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버티면 버티는 대로 좋은 구경을 하는 것이니 좋고, 네가 먼저 잠들면 잠드는 대로 놀림거리가 생겨나니 좋아서, 결국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좋았다. 내가 먼저 잠들면? 그러게 누가 새벽 4시에 깨우랬냐고. 나 혼자 거리낌 없이 편한 마음이었다. 그 덕에 더욱 눈이 감기는 나는 뜨끈한 커피가 담긴 머그잔으로 손을 녹이고, 내 앞에 앉은 너는 여전히 미간에 진 주름을 풀지 못했다. 뭐가 그리도 심각한 건지. 이제야 그리도 심각해진 건지. 이 말을 꺼내면 꼭 저 혼자 즐기려고 온 줄 아냐는 뻔한 투정을 받아줘야 할 게 뻔해 나는 다른 말을 꺼냈다. 말했지. 이유를 아는 것이 내겐 조금도 어렵지 않다고. 그러다 보니 꼭 너를 달래는 것처럼 말이 나왔지만 너를 달래면 안 되는 이유, 같은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놓치면 또 기다리면 되잖아. 주기혜성이라며.”


그 말에 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본다. 왜? 되묻듯 어깨를 으쓱하자,


“백 년을요?”


그 말에 뒤늦게 아차 싶었다. 그러나 이럴수록 뻔뻔하게 나가야 면이 서는 법이었다.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뭐야, 못 기다려?”


나랑 혜성 보고 싶다며. 네. 그럼 기다려야지. 별수 있어? ……아뇨. 사람이 어떻게 백 년을 기다리냐는 말이 나오기 전에 잽싸게 주제를 마무리 짓는 게 포인트. 얘기 끝났네. 끝. 다른 의견? 솔직히 나는 여기서 이 얘기를 마무리 짓고 싶었다. 아무래도 조금 많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람과 다르게 냉큼, 손을 번쩍 드는 너였다. 아니, 손은 왜 드는데, 너. 실내로 들어와 장갑을 벗은 네 손에 눈이 닿았다. 장갑을 벗자마자 핸드크림을 발라주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맥락 밖에서 치고 들어왔지만, 다행히 그 생각이 주가 되기 전에 너의 발언이 내 정신을 잡아채었다.


“기다려주시나요?”

“뭘?”

“저를요.”


조금 긴장한 것처럼 눈치를 보는 너. 나는 그 말에 눈을 깜박이고,


“……생각해보고.”


결국 백 년을 약속하고 마는, 나.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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