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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삼심 제도, 일사부재리, 최악의 기분

  • gwachaeso
  • 3월 19일
  • 3분 분량

<주술회전>

히구루마와 이타도리 이야기

삼심 제도, 일사부재리, 법에 관한 설명은 표준국어대사전을 참고했습니다.



삼심 제도라는 게 있다. 이것은 한 사건에 대하여 세 번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심급 제도를 말하며, 판결에 대하여 불복하는 자는 상소를 통해 판결의 재심사를 상급 법원에 신청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히구루마 히로미가 이타도리 유지와 이 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날은 그들이 처음 만난 날로부터 조금 먼 날에 있었다. 따라서 이타도리 유지는 처음 그가 왜 갑자기 법과 제도에 관해 저한테 이야기하는 것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여기서 법이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으로, 해야 할 도리나 정해진 이치를 말하는 법과는 동음이지만 의미하는 바가 달랐다. 그 정도는 이타도리도 지난 학교에서의 수업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히구루마 히로미와의 전투에서 기지를 발휘해 제이심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히구루마 히로미가 지난날 법률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대표적 직업인 변호사직에 종사했으며 아직은 그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아 여전히 변호사일지라도, 더불어 술식의 특성으로 인해 여전히 법이 가깝고 친숙할 수밖에 없는 사람일지라도, 오늘날 갑자기 제게로 와 법률 제도에 관해 설명하는 이유를 짐작하진 못했다. 히구루마 히로미 역시 그러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그 직후였다. 히구루마 히로미의 술식 주복사사에서 2심을 요구한 자는 지금까지 이타도리 유지 한 사람밖에 없었다. 판결에 불복한 자는 많았으나 보통은 항소를 떠올리기도 전에 히구루마 히로미에 의해 그 의지를 ‘몰수’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그가 꺼내려는 이야기의 논점이나 쟁점은 아니었기에 히구루마 히로미가 본래의 주제를 이탈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히구루마 히로미는 자신이 가진 술식의 오점 또는 결점에 관해 이야기하려 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삼심 제도는 한 사건에 대한 판결만을 다룬다는 거다. 다른 사건이라면 제일심부터 시작해야 마땅하다는 거야.


그러나 그날은 그러지 않았지.


왜였을까?


요컨대 히구루마 히로미는 지난날 그들의 전투를 복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순된 점을 지적했다. 이타도리 유지의 제일심은 미성년자의 출입이 금지된 장소에 출입한 행위에 몰수형을 판결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니 판결에 불복하여 제이심을 요구한다면 앞의 사건과 동일한 사건을 다시 다루는 것이 지당했다. 그런데 저지맨은 그러는 대신 시부야에서의 대량 살인을 그의 죄목으로 내세웠다. 또 다른 사건의 제일심이었다. 요점은 이러했다. 그의 영역 주복사사는 동일한 인물의 여러 사건을 기소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제삼심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은 몇 개까지, 어느 기한까지 누적되는가. 이것에 관한 의견을 구하는 것이었다. 설령 법에 조예가 없더라도 당사자의 입장을 수집하지 않고 누락할 순 없었다. 그것이 히구루마 히로미가 내린 판단이었다. 물론.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지만 정말 모르겠어.”

“그런가.”


그가 곧장 명확한 해답을 내놓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또 다른 당사자, 히구루마 히로미 본인조차 답을 알지 못하여 단서를 수집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 않은가. 제약과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보자고 저지맨이 무엇을 끄집어낼지 히구루마 히로미도 모르는 법정에 애꿎은 사람을 거듭 세워두는 일을 벌일 순 없기에, 히구루마 히로미가 할 수 있는 일에도 제약이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고마저 그만둘 이유는 되지 않기에 히구루마 히로미는 제가 가진 영역과 능력을 이해하고자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있었다. 늘 그래왔듯이. 하던 대로.


“근데 그 삼심 제도라는 거 말인데.”

“삼심까지 가서 판결이 나면 그대로 끝인 거였지? 그, 그 무슨 일사…….”

“일사부재리의 원칙.”

“맞아. 그거.”


형사 소송법에서 한번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하여서는 다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니 술식도 삼심이 끝이라는 걸 테고. 그렇지. 그럼…… 아, 술식에 관한 건 아니고 그냥 든 궁금증인데. 만약에 말야. 삼심이 다 끝났는데도…….


“받아들일 수 없으면 어떻게 해?”


히구루마 히로미 앞에 앉아 있는 이는 소년이다. 청년에 가까워지고는 있지만 아직은 소년인. 아직은 어린. 아직인 그의 눈을 피하지 않는 어른으로서 히구루마 히로미는 조금 간격을 띄운 뒤 그 질문에 대답했다.


“너는.”

“변식 능력과 제어 능력 중 하나라도 누락되어 심신상실이 되었으니 무죄라는 내 판결을 받아들였나?”

“……아니.”

“그런 거야.”

“그렇구나.”

“최악의 기분으로 살아가는 거구나.”

“…….”


돌이킬 수 없는 것이 그것 하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수만 가지 최악의 기분 속에서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히구루마 히로미는 대답을 요구받지 않아 입을 다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도 무수히 느낄 그 기분을 미리부터 하나 더 얹어주어 좋을 것은 아무래도 없었다. 어른이 되어 느껴도 좋을 게 하나 없는 그것을 아이가 느껴 얻을 게 무얼까. 아무것도 없으리다. 아무것도.

살아있기에도 바쁠 때다. 세 번 접어 삼킨 말과 생각은 그대로 묻어 다시 꺼내지 않기로 한다. 남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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