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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숨은 목 (手首)

  • gwachaeso
  • 3월 19일
  • 2분 분량

<주술회전>

이타도리의 손목 밴드에 관해서. 팬아트



손목 밴드를 샀다. 고죠 선생은 어떤 낌새를 알아차린 것 같았지만, 평소 같이 ‘흐음’ 하고 목 울리는 소리를 낼 뿐 가타부타 말을 얹지 않았다. 제가 아직도 그의 통제 범위 안에 있는지는 시험해 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고, 굳이 나서서 시험할 생각은 들지 않기에 이타도리 유지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로 그대로 두기로 한다. 제가 아는 것은 제 안에 있는 것도 함께 알게 되고, 이것은 무엇이든 이해하려 드는―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저와 상성이 그리 좋지 못하다. 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 안의 것은 이해했음을 알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저와는 그것을 공유하려 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타도리 유지 자신의 이해는 스스로 책임져야만 했다. 원한다면. 원하지 않는다면, 그저 지금까지처럼 살아가면 되리라.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손목 밴드를 매자 처음엔 관심을 보였던 친구들이 얼마 후 그것을 거둬들인다. 예상대로다. 밴드는 그리 주의 깊게 관심을 기울일 액세서리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손목은 왜? 안 좋아? 예방 조치? 그냥 패션? 조금 뻐근한 것 같아서. 경정권은 아무래도 주먹을 쓰니까. 그러겠네. 관절은 조심해야 해. 맞아. 그들은 어떤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지만 이타도리 유지는 그들 앞에 오만하게 굴어선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들은 고죠 선생과 다르고, 또래 사이엔 그들만의 기민함이 적용된다. 감추고자 한다면 능히 감출 수 있는 그들 사이에서 이타도리 유지는 그것이 제가 변명으로 내세운 경정권과 비슷하다고도 생각한다. 어슷 썬 것처럼 들어오는 시간차에 방심해선 안 된다는 점에서. 세상에 단숨에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라도 한 것처럼 숙였던 고개를 들고, 등졌던 저로 다시 시선을 향하는 것처럼. 그렇기에 이타도리 유지도 오로지 그 혼자만의 공간에 이르기 전까지는 결코 방념하지 않는다. 이는 상식이다.


손목 밴드를 빼자 손목이 드러난다. 이내 ‘쯔읍’ 하고, 아랫입술을 이로 눌러 쭉 숨을 빨아들일 때와 같은 소리를 내며 손목이 갈라지고는 곧 입술 형상이 그 자리에 가로로 생긴다. 손목의 입은 과할 정도로 저 자신을 벌려 웃고, 그에 따라 제 손목도 뒤로 젖혀지니 마치 허리를 뒤로 젖혀가며 웃는 것 같이. 목을 뒤로 젖혀가며 웃는 것 같이. 손목을 꺾어가며 웃던 입이 여전히 웃음이 새어 나오는 입을 통해, 곧 자신을 통해 입길을 시작한다. ‘언제까지 숨을 생각이지?’라고.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 아니라? ‘거 봐. 너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알려줄 생각은 없는 주제에 낄낄 웃는 목이, 손목이 방아를 찧듯 끄덕인다. ‘언제까지고 막아둘 순 없을 거다.’ 알아.


그건 알아. 하지만 오늘은 아니지. 오늘은 아니야. 저 역시 그 말을 끝으로 손목 밴드를 다시 아래로 내린다. 막는다면 듣지 않을 수 있었다. 적어도 제 손목에서 지껄이는 말들은. 그렇지만 경동맥이 지나는 목 부위가 두근거린다. 맥동하는 것이, 다음에 갈라질 곳은 거기인가 보다.


목을 가리는 옷이라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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