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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스물여덟 살 청년이 옥문강에 갇혔다

  • gwachaeso
  • 3월 19일
  • 2분 분량

<주술회전>

IF 시부야 사변에서 옥문강에 갇히는 순간 누군가의 시선이 스쳐지나갔다면



스물여덟 살 청년이 옥문강에 갇혔다. 스물여덟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스물여덟이나 되었다고 해야 하나. 사실만을 거론하면 단지 스물여덟 살인 청년이었지만 ‘사실’이란 게 과연 중요한 건지 다소 불분명한 현실에서 청년이 상자에 갇혔다. 이 옥문강이라고 이름 붙은 상자는 발동 조건에서부터 사실의 위상을 흔든 주구였기에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주물에 한없이 가까운 주구이기도 한 이 상자는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절대적이고 부동한 단위인 시간을 재면서 모순되게도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며 부정확한 ‘기억’ 따위를 단위로 택했다. 기억의 흐름으로 시간을 잰다니, 쉴 새 없이 방향을 바꾸는 순행과 역행 따위 알 바 아니라는 것일까? 앞뒤 없이 이어진 뫼비우스의 띠처럼 전후 없이 외장과 내장이 하나가 되는 클라인의 병에 담긴 기억은 이윽고 삼 년 치로 헤아려졌는데, 청년이 떠올린 기억이란 게 삼 년 치나 된다는데, 그것을 증명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망각하는 대신 외면한, 우물에 빠뜨렸다 두레박으로 길러낸 기억이 진정 푸른 봄이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이 상자는 마치 영역처럼 필중의 특성으로 발동하기에 발동한 이상 그것은 ‘이미’ 조건을 충족하는 사실이 되었다. 그러니 뭐가 되었든 청년이 환기한 기억은 삼 년 치가 ‘맞았다’. 그런 사정으로 그렇게 정해졌다. 그게 사실이란다.


그런데 그렇게 정해진 사실과 사정과 사유 속에 불순한 것이 하나 껴 있다.


또는 순정한 것이 하나 있어 그 하나가 삼 년 치 푸른 봄의 회상 속 오로지 단 한 순간의 찰나에서 스물여덟 살의 청년을 응시했다. 이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기억이란 과거이기에 미래는 그 안에 담길 수 없는 것이 정의일진대, 청년이 열여덟일 적 죽은 자의 눈이 어찌 스물여덟이 된 청년을 주시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존재’했으니 비존재인 현재와는 모순되는 ‘사실’이 되었다. 그 의미와 중요성을 모르겠는 사실 말이다. 그럼에도 그 사실에 의하면, 지나간 역사에 의하면 오래전, 그러니까 열 해 전에는 평생을 그러한 상태로 살아간 자가 이 땅에 있었다. 세상 만물과 모순된 채로 세상을 살아간 자가 있었다. 그러니 시간과 공간 역시 그에겐 사실만큼이나 의미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러했다’.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 시선이 이미 존재했기에. 청년이 그것을 감각했기에. 그것은 존재한다. 이 현실에.


그래서? 달라지는 것은 딱히 없었다.


시선은 사선을 넘지 못한다. 넘지 못한 채로 선 밖에서 그저 청년을 관망하는 데 제 행동을 다하고 제 영향을 그친다.


청년도 그 사실을 아나니 서서히 닫히는 상자 속에서 상자 밖 시선이 상자에 의해 가려지길 기다린다. 기다리는데, 분명 눈밖에 없을 그것에게 입이라도 갈라져 생겨났는지 오므려지는 상자 벽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맞아. 그것은 분명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청년을,


“××.”


비웃는다. 청년을, 상자에 갇힌 꼴은 자기도 같을 거면서, 비웃기는. 스물여덟 살 청년은 그때 그 사내가 몇 살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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