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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악식 (惡食)

  • gwachaeso
  • 3월 19일
  • 2분 분량

<주술회전>

스쿠이타스쿠. 폭력성, 잔인함 주의



호명되는 이름이 본명이 아니란 이야기야 파다하지만 정작 그 본명을 아는 이는 없어 양면 스쿠나로밖에 불리지 않는 이의 생득 술식은 베어냄에 그 본질을 두고 있었다. 그에 따라 그는 무언가를 끊고 자르고 가르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고, 단순한 만큼 복잡한 조건이 필요하지 않은 술식은 강력했지만 파훼법 역시 간단한 편에 속했다. 요컨대 잘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끊어내는 힘보다 질긴 자는 살아남는 법이었고, 쾌락의 중추를 미각에 두어 미식을 즐기는 스쿠나에게도 질겅질겅하여 이로 쉽사리 끊어내지 못하는 식감은 선호하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 검질긴 것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구태의연하게 과거를 답습하는 것도 재미없긴 매한가지지만, 아무리 베어도 끝까지는 도통 베이지 않아 악착같이 버티는 이를 떼어내는 일도 성가시긴 매일반이었다. 그래, 스쿠나는 지금 이타도리를 보며 그런 불유쾌를 느끼고 있었다. 한때는 감히 저를 삼켜 소화하려 한 자에게서, 그러다 실패하여 도리어 저(주)를 곱씹게 된 자에게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느끼며 저에게서 무엇을 ‘흡수’하여 그의 것으로 삼든 신경 쓴 적이야 없지만 보잘것없는 인상이나마 구체화하여 연상한 그는 소년이었다. 성장기의 소년은 그를 감싼 주변의 모든 것에서 빨아들인 양분으로 성장하는 것이 본능이고 본분이었으니 그 자신은 끔찍하게 여기든 별 수심 없이 받아들이든 가장 가까운 곳에 붙어 있는 존재를 닮는 것 역시 자연한 순서였으리라. 스쿠나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지금도.


스쿠나에게 미식은 곧 쾌락이었고 쾌락은 그를 행동하게 하는 유일한 행동 원리였다. 따라서 그에겐 ‘원치 않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입에 넣어 삼킨다’라는 상황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다. ‘삼켜 없앤다’라는 선택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겐 선택지로 떠오른 적 한번 없는, 하등 가치 없고 의미 없고 의의도 존재하지 않는 결정. 이타도리를 내려다보는 지금도 스쿠나에게 가치관의 변화 같은 중대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타도리에겐 억울할 만큼의 긴 시간이 흐른 끝에야 겨우 불유쾌함이란 인지. 성가시다는 인식. 거슬린다는 의식이 그에게서 꿈틀거린다. 그 긴 고초 끝에야 이타도리는 겨우 그것을 스쿠나에게 주지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그 가슴을 밟고 목젖을 발끝으로 눌러 컥컥 뱉어내는 숨을 들여다보고 있었나. 입가로는 삼키지 못한 침을 흘리는, 핏발이 서서 치뜬 눈을 내려다보며, 숨이 모자란다며 고통을 토하는, 빠그라진 채로 펴지지 않을 허파를 짐작하면서도 호명하였나. 이 자의 악취미란 이러하다. ‘죽어. 스쿠나. 죽어.’ 저를 저주하는 자를 관찰한다. 익숙한 풍경과 낯익은 정경. 발밑에는 꿈틀거리는 버러지…….


입에 넣으면 악식일 것이 분명할진대…….


쩌억, 벌리는 입이 입맛을 다신다. 입에 넣을까, 말까. 처음 드는 고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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