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37분 : 부재중전화 1건
- gwachaeso
- 4월 7일
- 8분 분량
<HQ!!>
오이이와
괴담 - 전화 편
날조 전개, 사망 소재 주의
1. 오후 12시마다 이와이즈미에겐 국제전화가 온다.
A는 이와이즈미의 팀에 합류한 지 딱 일주일이 되었다. 그가 입사 후 일주일 만에 팀장의 얼굴을 본 이유는 달리 없었다. 팀장인 이와이즈미가 출장을 갔기 때문이었다. 새 직장에 출근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돌아온 이와이즈미는 면접 때 봤는데 기억하냐며, 다시 만나 기쁘다고 인사했고, A는 그가 그때와 마찬가지로 검은 반소매 티를 입고 있다는 사실로 그를 기억했다. 그때가 언제냐면 면접을 보러 갔을 때다. 검은색은 확실히 깔끔하고 무난한 색이었다. 팀장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식사 시간이 다가오는데 다른 팀원들은 외근을 나가 팀장과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였다. 붙임성 있게 굴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식사하시겠냐고 용기를 내어 이와이즈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거절당하면 어쩌나 우려한 게 무색하게 이와이즈미는 그러자며 웃으며 수락했지만, 할 게 조금 남아 있으니 먼저 나가면 따라가겠다고 하여 잠시 자리를 비켜주게 되었다. 잠깐, 그런데 왜 그래야 했을까? 등 뒤로 문이 닫혔을 때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지만, 돌이켜보면 이와이즈미는 그런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근데 왜 자신은 당연히 그 곁을 내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A는 이미 사무실 밖으로 나온 후였다. 그렇지만 의문을 풀 방법이 아예 없진 않아 갑자기 치솟은 호기심을 조금은 달래 진정시킬 수 있었다. 유리문은 일부가 반투명한 시트로 덮여 있고 눈높이쯤엔 또 덮여 있지 않아 문을 열지 않아도 안을 조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대놓고 들여다보면 좀 민망하니까 힐긋대는 정도로만 안을 곁눈질하니, 키보드와 마우스를 달깍대며 의자에 앉아있던 그가 잠시 후 책상에서 뭔가를 집어 들고 귀에 가져다 댔다. 뭔가의 정체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아, 전화구나.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뒤돌아 창밖을 바라보며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뒤를 돌고 있어 표정이나 입 모양도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해야 할 일이란 게 이때쯤 걸려 오기로 약속된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은 얻을 수 있었다. 근데 업무 전화라면 점심시간인 이때 전화를 거는 건 좀 실례가 아닌가? 어쩌면 점심 식사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겠단 생각에 조마조마해하며 문에서 눈을 뗀 A는 문 옆의 벽에 등을 기대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이와이즈미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먼저 내려가 있지 서서 기다리고 있었냐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고, 식사는 뒤로 미루고, 다시 말해 포기하고 잠시 들어와 일 얘기 좀 하자고 할까 봐 겁먹었던 A는 안도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 근처 식당들을 미리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아, 이 근방 맛집이라면 내가 잘 알지. 따라와요. 가리는 음식 혹시 있나? 아뇨, 없습니다! 잘됐네. 씩 웃은 그를 따라가 함께한 식사는 맛있었다. 사실 조금 불편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놀랍기까지 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팀원들에게서 들어온 평판대로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애인일걸요.”
사수인 B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입사한 지 이주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들렀을 때, ‘매일 정오쯤 전화를 받으시던데 혹시 업무 전화인 건가’ 뭐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업무라면 업무죠, 뭐. 연애 업무. 그렇게 말하며 까르르 웃은 B는 A에게 빨대와 홀더를 내밀었다. 그럼 매일 통화를 하시는 거네요. 그쵸. 전에 사진도 한 번 본 적 있는데 엄청나게 잘생기셨더라고요. 우와. 게다가 듣기로는 그거 국제전화인가 그럴 거예요.
“국제전화요?”
“해외에 계신다고 들었거든요. 여기랑 시차가 10시간인가, 12시간인가 차이 난다던데.”
그럼 낮과 밤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는 소리다. 건네받은 빨대를 플라스틱 컵 뚜껑에 뾱 박자 B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애인분 전화 받을 때 팀장님 목소리 들은 적 있어요? 아니요. 왜요? 저도 자주 보거나 들은 건 아닌데, 나중에 기회 되면 한 번 직접 들어보세요. 표정도 그렇고. 표정이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저런 표정을 짓고 저런 목소리를 내는구나 싶게 된다니까요.”
그럴 때면 자신도 연애가 하고 싶어진다며 다시 웃는 B였다. A도 B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빨대를 입에 물었다.
2. 오후 12시마다 이와이즈미에겐 애인의 전화가 온다.
12시가 다가오는데 회의에 참석하러 간 이와이즈미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깜박했는지 책상엔 휴대전화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채였다. 아마 오늘도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 오겠지. 사실 첫날은 거의 예외로, 보통 전화가 걸려 올 때쯤 되면 이와이즈미는 그보다 먼저 휴대전화를 들고 자리를 비우곤 하였다. 지금 통화하러 가시는 거죠? 옆자리에 앉은 B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의자 등받이를 밀어 칸막이 너머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얼굴이 제법 짓궂었다. 열렬하시네요. 그쵸. 저도 저런 사랑을 해야 할 텐데. 지난번 소개팅은 어떻게 되셨어요? 어휴, 말도 마요. 그게…….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엔 B도 없고 C도 없고 이와이즈미도 없어서 사무실엔 A만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다. A에게 쌓인 일이 그만큼 많기 때문은 아니었다(A는 파견 나가기 싫다며 우는 표정을 짓던 B를 기억했다). A도 점심시간엔 전엔 목표한 바를 이루고 나올 수 있을 터였고, 그때쯤이면 팀장과 함께 회의에 참석한 C도 돌아올 테니 같이 점심을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사정을 애인분이 아실 리는 만무했다. 책상 위에 놓인 이와이즈미의 휴대전화에서 우우웅, 하고 진동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제 휴대전화는 잠잠했기에 이와이즈미의 휴대전화가 범인이란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시계를 내려다보면 오후 12시. 정오. 알람이 따로 없다.
평소라면 진동음이 세 번 반복되기 전에 전화를 받았을 이와이즈미인데. A의 눈은 이미 모니터에서 떠났고, 귀는 저 진동음이 도중에 멈추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쫑긋거렸다. 점심을 먹으러 일어나는 척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니, 부르르 떠는 휴대전화는 역시 이와이즈미의 책상 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금이 간 액정 화면에 떠 있는 건 인명용 한자 세 글자.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A는 이와이즈미의 휴대전화를 전에도 본 적 있었다. 언제 저렇게 금이 갔지? 아니, 금이야 뭐 순식간에 가는 거긴 한데 저 휴대전화 말이야.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그럼. ……A?”
저 기종이었던가?
“아, 팀장님. 팀장님께 전화가…….”
그 순간 진동음이 끊어졌다. 그리고 전화를 받으며 들어오던 이와이즈미와 눈이 마주쳤다. 아. 어. 고마워. 확인할게. 사무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온 이와이즈미는 휴대전화를 낚아채듯 받아 든 뒤 말을 걸 틈도 없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만화적 용법을 따르면 딸꾹질을 하면 적절할 것 같은 순간이었다. 순간이지만 와락 일그러지던 이와이즈미의 얼굴과 눈을 처음 본 순간이기도 했다. 잠시 그의 뒷모습을 쫓으며 말을 잇지 못하자, 이와이즈미의 뒤를 따라 들어오던 C가 A를 불러 A의 이목을 제게 집중시켰다. A. 아, 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없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 우리. 할 말이 있구나, A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점심도 아직이지? 네, 점심도……. 일단 나가자. 넵. A는 C를 따라나섰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십시오.」
‘네에, 네에. 나도 알겠다니까? 지금까지 귀찮게 굴어서 미안하게 됐고, 이제 두 번 다시 너한텐 연락 안 할 테니까 안심하라고. 됐어? 나한테 먼저 걸지도 마. 차단할 거니까!’
‘야, 오이카와. 야!’
삐로롱. 언젠가의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를 이와이즈미는 아직 기억한다. 거짓말쟁이. 그래 놓고 먼저 거는 건 또 네놈이면서. 또. 늘 그래왔듯이. 늘 그런 식으로……. 슬그머니 굽히고 들어와 징징거리고……. 그 때문에 서서히 풀려가던 화가 다시 솟구치던 날도 없지 않았다. 제법 많았다. 그래도 누군가 먼저 전화를 해야 한다면, 먼저 전화를 거는 게 너인 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럼 네가 먼저 걸어야지, 내가 먼저 걸어야겠냐? 그렇지만 그날은 조금 많이, 조금 과하게 나쁜 편이었다. 하루만 빨리, 또는 하루만 늦게 전화를 걸 생각은 안 들더냐? 게다가 또 너 좋은 시간대에 걸기나 하고.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십시오.」
일부러 안 받은 건 절대 아닌데 꼭 그런 것처럼 사람을 나쁜 놈으로 만들기나 하고. 망할 녀석. 일부러 안 받은 건 아니었는데. 정말로.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그러니까 다시 걸어줘. 내가 받을 수 있도록. 다시.
다시.
3. 오후 12시, 이와이즈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이와쨩!」
‘……오이카와.’
그날의 소감을 말해볼까. 그는 영락없이 자신이 미친 줄로만 알았다. 모를 수 없기 때문에, 착각할 수도 없기 때문에, 모를 수 없고 착각할 수 없는 목소리이니 결국 자신이 미쳤다는 결론밖에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단호했다. 단호해야만 했다.
“……이딴 장난 치지 마라. 다음엔 안 봐준다.”
전화를 끊자 반드시 장난이어야 할 전화는 다시 걸려 오지 않았다. 그날은. 어쩌면 자신은 그 애가 저를 위해 딱 한 번 다시 건 전화를 무심히 끊어버린 건 아닐까? 아니, 전화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전부 착각이고 백일몽인 건 아닐까? 한낮에 걸려 온 전화였지만 아지랑이에 취해 있었다면 그럴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역시 미쳤다는 결론밖에 나올 수 없다. 저에게 조심스럽게 상담을 권유하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저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 내일은 월차를 쓰고, 휴대전화도 바꾸자. 이미 지나간 어느 날에 뒤늦게 부재중전화를 발견하고 그 발신인을 확인하기 무섭게 집어던지고 만 휴대전화는 액정뿐 아니라 케이스로 보호받아야 했을 프레임까지 떨어지기 직전으로 너덜너덜했다. 잠을 꼬박 설친 채로 이튿날 오전이 되었다.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낡은 옛 휴대전화는 가방 속에 밀어 넣었다. 상담은 오후로 예약되어 있었다. 가방에서 진동이 울렸다. 새 휴대전화는 손에 들려 있는데, 유심칩도 제거한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다. 삭제하지 않은 알람이라도 남아 있는 건가? 그러나 한참을 뒤적여 가방에서 꺼낸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이와이즈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금이 간 화면을 확인한 순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손에는 계속해서 진동이…….
전화가…….
「미안! 이와쨩, 진짜 미안해! 그러니까 끊지 마! 응?」
모를 수 없고 착각할 수 없는 목소리가. 응? 응? 결국 한참 후에야 입을 뗄 수 있었다. 오이카와. 응. ‘네가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못했다. 미안하다.’ 같은 말은 할 수 없었다. 공포를 느끼기에도 한낮에 걸려 온 전화라 주변이 너무나 말갛고 화창했다. 오후 12시니 당연했다. 일기예보에선 비 소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이카와.
「응. 이와쨩.」
전화를 받으며 다른 손으론 새 휴대전화를 조작해 상담을 취소했다. 어차피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이 꿈이 이어지는 잠시 동안만 꿈을 꾸며 위로받자. 어차피 자신은 그것으로 만족하니,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욕심부릴 생각은 없으니, 그렇게 매일 오후 12시면 전화가 걸려 와 짧은 통화가 이어지고 끊어졌다. 통화가 길어질 순 없었다. 여긴 낮이어도 거긴 밤이지 않은가. 얼른 끊고 자. 내일이 있잖아. ‘내일’ 또 전화하면 되지.
「그러네. ‘내일’ 또 전화하자.」
“그래.”
그렇게 ‘오늘’도 아지랑이 속에 마무리되는 촌극은 언제까지 이어지는지…….
4. 오후 12시 5분 전, 이와이즈미는 휴대전화를 움켜쥐었다.
다툼이 벌어졌다. 구단에서 트레이너와 선수 간의 갈등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이와이즈미와 우시지마 이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기는 처음이었다. 언쟁이기에 다른 사람은 끼어들기도 참 애매하였다. 뒤엉켜 몸싸움이라도 하면 뜯어말릴 수 있기라도 한데, 아직은 ‘목소리가 조금 커졌을 뿐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왜 방해하느냐’고 동시에 공격당할 가능성도 적잖았다. 사태를 더 심화시킬 가능성도. 결국 A, B, C 모두 이른 점심시간을 갖기로 결의한 뒤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이렇게 도망쳤다고 해서 괜히 불똥을 다른 곳으로 튀기거나 악감정을 갖거나 할 팀장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기도 했다. 거기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 우시지마 선수를 찾아 사무실로 온 다른 선수들까지 요령껏 돌려보내야 했다. 저, 아직 두 분 말씀이 안 끝나서요. 아, 네. 그럼. 그러나 복도를 빠져나가는 줄 가장 뒤에 서 있었던 B가 울상을 지으며 발을 멈추는 바람에 그들은 잠시 발을 멈춰야만 했다. 아, 저. 휴대전화를 놓고 왔어요. 책상 위에……. 아무리 괜한 데 화풀이하지 않는다고 해도 불똥이란 게 의지대로 튀고 말고를 결정하는 것이던가? 등 뒤를 한번 돌아본 A가 결국 B를 위해 자원했다. 책상 위에 있죠? 제가 가지고 올게요. 아, 정말. 부탁드려요. 고마워요, A.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은 안쪽 칸막이 방으로 이동했는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목소리도 벽에 막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잽싸게 휴대전화만 챙겨서 다시 빠져나오는데, 문밖으로 몸을 빼냄과 동시에 안쪽의 문이 벌컥 열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A였다. 그런데 A, 꼬리가 제법 길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 듯했다. 열린 문틈으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문밖 바로 앞에 서 있는 A까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네 말대로 전부 착각이라면 한동안 쉬는 게 좋겠지. 휴직계를 써라. 이와이즈미. 쉬면서 병원에 가.”
야, 너…….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등을 돌려 다시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갈 뻔하였다. 그만큼 팀에 애착이 생긴 A였고, 그만한 시간이 흐른 후이기도 했다. 우리 팀장에게 너무 심한 말을 하는 게 아니냐고 따지려 들기 직전이었다. 단호한 목소리가 두 사람의 행동을 동시에 잘라 멈췄다.
“아니면 그만 용서해.”
“…….”
“오이카와가 왜 자꾸 네게 전화를 거는지 이유를 알고 있지 않나.”
멈출 수 있지만 멈추지 않고 있다. 왜 자꾸 제게 전화를 거는지 이유를 알고 있지만 고집을 부리며 놓아주지 않고 있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분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착각이 아니라면, 그는 정말로 그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있다. 그 녀석이 그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서 걸려 오는 전화지? 무엇을 대가로 연결되고 유지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것에 관해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두 사람 모두의 지인이기 때문이다. 알잖아. 네가 모를 리 없잖아.
“그건 오이카와에게도 못 할 짓이다.”
그 말은 곧 이와이즈미 자신에게도 못 할 짓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그러나 한참 후에 이와이즈미의 입에서 나온 ‘알아.’라는 대답은 자신보다 상대에게 해가 될 일을 더 중히 받아들여 나온 대답 같았다. 구단에서 트레이너와 선수의 관계는 일로 묶여 있지만, 그 전에 두 사람은 친구 사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엔 마냥 쏘아붙이는 듯했지만 결국 자리한 것은 비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또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A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빠져나왔다. 망가진 전화기에 전화가 걸려 오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이 되리라 직감하면서.
5. 오후 12시 5분 후, 이와이즈미는 전화를 받는다.
미안. 뭐야, 왜 갑자기 사과해? 이와쨩이. 뭐 잘못했어? 나 몰래 바람피웠어!? 아니. 그럴 리 있겠냐. 그냥, 이제 그만 전화해도 된다고. 망할카와. 이와쨩 점심시간 바뀌었어? 아니. 점심시간은 그대론데. 그럼 왜! 너도 이제 그만 사과해도 된다고 말하는 거야. 사과? 무슨 사과? 나 잘못한 거 없어! 진짜로! 웃기고 있네. 너…….
너, 마지막에 나한테 전화 건 거 후회해서 계속 전화하는 거잖아.
…….
안 걸었으면 내가 네 전화 못 받았다고 후회하는 일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서 계속 전화하는 거잖아. 너. 이 멍청카와가.
네 속을 모를 줄 알고. 내가.
…….
.
일부러 안 받은 거 아니야. 알지.
알지, 그럼. 그때 업무 시간이었잖아. 걸고 나서 나도 후회했어. 아, 지금 걸어봤자 이와쨩 스마트폰 안 보고 있을 텐데! 하고.
그럼 됐어.
응. 그치만 맛키랑 맛층에겐 제대로 사과해. 상담받고 있다고 거짓말한 것까지 전부 다. 네 녀석에게 반박할 수 없는 잔소리를 듣다니 뭔가 분하네. 아, 그 말엔 진짜 상처받았어. 얼른 사과해. 얼른! 푸핫. 뭐라는 거야, 진짜…….
거기서도 배구 잘하고.
응. 당연하지.
잘 지내고.
아, 이와쨩 지금 진짜 우리 엄마 같아. 알아?
아주머니 걱정은 말고.
고마워. 정말로.
다음엔 전화 말고 직접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좋지. 그럼.
끊는다.
응.
끊을게.
.
.
6. 오후 12시마다 이와이즈미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
내려다 놓고, 눈을 감는다. 잠시 동안. 이내 눈을 뜨고 입을 연다. 밥 먹으러 갑시다. 좋아요, 팀장님. 일어나죠. 다. 전화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