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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용사는 마왕의 꿈을 꾸는가

  • gwachaeso
  • 3일 전
  • 4분 분량

<HQ!!>

오이이와

시점의 부재

날조 전개 주의



그는 좀처럼 돌려 말하지 않는다. 그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 그러지 않는 성격 탓이다. 이 이야기는 그런 그의 이야기이니 그를 존중하여 이야기 역시 시작부터 핵심을 노출하는 것이 옳겠다. 사실 하나. 한 달 전 사고를 당한 그의 친구는 현재 한 달째 잠들어 있는 상태이다. 사실 둘. 또한 그는 한 달째 친구의 입원실을 찾는 것을 제 일과에 집어넣은 상태다. 그 애가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서술하는 것은 그가 깨어나지 않는 지금 논하기 부적절할지도 몰랐다. 그가 깨어나지 않는 한 피해는 계속 누적될 터이니 미리 계산했다가 터무니없이 낮은 보상을 받을 순 없기 때문이었다. 그럴 순 없지. 그럴 순 없어. 이 녀석이 누군데. 앞으로 어떤 녀석이 될 녀석인데. 아무리 그라도 그렇게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날 우연히, 그가 친구의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던 자는 그의 눈에서 정확히 위와 같은 말을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고개를 들었더라면. 그러나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이내 곧 모든 것이 허무해진 그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뜨리며 눈으로 말하기도 그쳤다. 그는 좀처럼 돌려 말하지 않는 성격이다. 돌려 말할 거라면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리기를 택한다.


“어이.”


벽에 걸린 시계로는 오후 2시 40분. 늘 이맘때쯤 친구를 찾아오는 그가 그 애에게 말을 걸었다. 한 달 정도 반복된 일상이지만 앞으로 보름 후면 끝날 일과이기도 했다. 그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기숙사를 신청했고, 그러면 기껏해야 주말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 터였다. 그것도 용돈을 탈탈 털어 교통비로 전부 탕진해야 가능했다. 그러니 가능하면 보름 안에 깨어나 줬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었다. 그 이상은 나도 힘들다고.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나면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다. 너도 얼른 아르헨티나 가야 하잖아. 갑자기 취소된 비행기 표는 물어야 하는 수수료가 어마어마해 환불받아도 제값을 받진 못했을 것이다.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말꼬를 트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말을 고르던 그들의 공통된 친구들에게서 주로 들을 수 있는 시작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준비해 온 그였다.


“있잖아. 들어봐.”


스스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그는 구태여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공상을 전혀 하지 않거나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표현은 좀 더,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뭔가를 창조하는 사람에게나 쓸 수 있는 표현 아닐까? 이를테면 그가 어릴 적부터 죽 좋아한 거대 괴수 영화 시리즈 같은 걸 만들어내는 사람에게나 붙일 수 있는 칭호 또는 칭찬 같이 들렸다. 그런 표현을 듣기에 저 같은 사람은 그저 그걸 보고 즐길 뿐, 그걸 시작부터 만들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여겨졌다. 그러니 이제부터 꺼낼 이야기 역시 그런 꼴이었겠거니 하는 그였다. 전에 읽은 무언가에서 깊이 감명받은 나머지 머릿속 무의식에서 제 것처럼 재현한, 즉 표절 범벅의 공상이겠다. 내가 꿈을 꿨는데. 그거 알아? 꿈속에서 말야. 머쓱해 하면서도 입을 멈추지 않는 그는 오늘도 말하기로 결심하면 돌려 말하지 않는 성격 덕을 본다.


“웃기지 않냐?”


꿈속에서 그의 친구는 마왕이었다. 웃기면서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너도 그래?”


너도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물어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 역시 한 달 전과 같았다.


그래서 멋대로 생각하자니 그렇기 때문에 그가 깨어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동시에 그렇더라도 차라리 마왕이 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마는 그이기도 했다. 정의롭고 선하여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야 악한이 아닌 이상 다들 어느 정도 그러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녀석과 용사라는 직책이 어울리진 아니했다. 그렇다고 마을 주민 같은 엑스트라로 남는 걸 견딜 성정도 아닌바. 차라리 마왕이 되면 좋다구나 하고 날뛸 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고, 그에 얼씨구나 하고 그를 쥐어박기 위해 뛰어들 제 모습도 따라 그려낼 수 있었다. 마왕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려면 역시 용사가 되어야 할까. 그는 꿈에서 제 모습은 보지 못하고 깨어났다. 꿈은 꿈속의 친구가 아직 용사에게 혼나기 전, 마왕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시점에서 끝났다. 그 뒤의 이야기는 알 수 없었다. 뜻대로 이어 꿀 수도 없는 것이 꿈이거니와 애당초 제가 꿈을 꾼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기에 기대할 수 없는 추후의 전개이기도 했다. 꿈을 꾼다는 것은 결국 얕은 잠을 잤다는 의미가 되는데 그는 평소에 별일 없는 한 항상 숙면하는 건강한 소년인 탓이었다. 이제는 청년이었다.


너도 그렇지만.

너도 이제 소년티를 벗어야지. 그래야 할 때잖냐.


마왕 같은 건 어릴 적 역할 놀이에 심취해 꿈꾼 공상으로 남겨두고 졸업해야 할 때였다. 제 꿈속에서나 존재하는 이야기가 되어야 할 터였다. 그러니 깨어나야지. 얼른 일어나. 주말마다 몇 시간씩 기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고역이었다. 사양이었다. 얼른 일어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깨워버릴 테다. 용사라고 하면 낯간지럽게 들려 부끄럽지만, 그러면서도 실은 조금 두근거리지만, 마왕의 뒤통수를 때리기 위해선 반드시 용사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면 뭐, 기꺼이. 못할 것도 없어서.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어디 한 번 실컷 즐기고 있으라고.”


그렇게 말하고 마는 그이기도 했다.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을 곳이지 않나. 용사가 찾아가기 전까지 마왕은 떵떵거리며 살다가 용사 일행에게 휘둘려 맞고 패배하는 것이 정석이니까. 그전까지는, 그래도 어디 춥거나 외롭거나 깜깜하거나 고통뿐이거나 하지 않는 곳에서 이 지난한 한 달을 보내고 있기를 바라는 그였다. 그러한 고통은 여기 이곳에 남겨두고 너는 머리 좋게 다 나을 때까지, 말짱해질 때까지 육신은 여기 두고 도망간 것이기를. 너는 당연히 그럴 수 있을 만큼 머리 좋은 녀석이니까. 기분 나쁘게도.


그리고 이젠 돌아와야 할 때가 되었다. 돌아와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때였다. 그의 상상력으론 마왕 시점에서 펼쳐지는 세상을 묘사하는 것이 힘들었다. 제 상상력이 빈곤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거기까진 과했다. 그러니 쓸데없이 생각이 많고 그러면서 뻔뻔하게 입 싹 닦는 제 친구의 시점이 필요했다. 어릴 적부터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을 소중한 것인 양 들뜬 채로 들고 제게 가져오던 녀석이었으니. 반드시. 그 애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할지도 몰랐다. ‘눈을 뜨니 머리 위에 산양의 뿔이 달려 있었다.’ 상상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이건 그 애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이야기였으므로.


얼른 일어나.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이야기를 마치고 눈꺼풀을 내리고 눈동자를 덮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와 교대하러 올 때까지 짧은 시간이나마 눈을 붙일 심산이었다. 가능하면 꿈을 이어 꿀 수 있길 바라며 잠이 들 작정이었다. 일어났을 때는 함께 일어나기를 바라는 소망이었다.


그렇게 겨울날의 오후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이고, 그를 존중하여 결말까지 누설하자면, 그의 친구는 한 달 하고도 이틀을 더 잠들었다가 깨어났으며 뒤통수를 갈기기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친구에게 이렇게 속살거렸다고 한다. 그거 알아?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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