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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이미 아는 사실

  • gwachaeso
  • 3일 전
  • 2분 분량

<HQ!!>

카게오이

왼이 른에게 총을 쏴야 빠져나가는 방에 갇힌 두 사람



“아! 짜증 나니까 빨리 쏴!”

“쏠 거예요!”


말을 마친 오이카와는 그대로 벌러덩 뒤로 누워 버렸고, 지지 않고 소리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보고 쭈뼛대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상은 온통 흰 벽과 천장, 바닥뿐, 경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카게야마라고 바닥과 벽을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바닥에 대 자로 뻗어 팔 벌려 누워버린 오이카와와 다리를 쭉 뻗고 앉은 저의 높이가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들이 적어도 같은 바닥을 딛고 있다고는 확신할 수 있었다.


“빨리 쏘고 나가 버려.”

“그럴 거예요.”


대화가 무리 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고 있는 것 또한 분명했다. 그 외의 것은 오리무중이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출입구가 어디 있는지도, 있다면 그것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조차 카게야마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카게야마의 오른손엔 이곳에서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대뜸 들려져 있던 총이 여전히 들려 있었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제가 이 총으로 오이카와를 쏘는 순간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사실을 제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곳에 저희가 갇혔다는 사실처럼 당연하게 주어진 앎에 근거는 없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이마에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낸 뒤 총부리를 갖다 대었다. 이마에 닿은 총구가 차가운지 어떤지는 말하지 않고, 다만 눈을 깜박이며 카게야마를 올려다보는 오이카와였다.


“얼른 쏴.”


죽지 않을 걸 알잖아. 말을 마친 오이카와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카게야마는 그가 보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도 아는 사실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간에 오이카와와 단둘이 있는 이 순간이 현실일 리 없었다. 꿈에선 자주 농락당하는 현실 감각이지만 그 정도도 구분하지 못할 만큼 기절한 건 아니었다. 그러므로 카게야마가 방아쇠를 당기더라도 오이카와는 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꿈이니까요?”


이미 아는 사실에서,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대답을 예상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곳과 현실의 차이점 중 하나였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예상하는 데 성공한 적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능수능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카게야마의 예상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아는 사실에서 카게야마는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질문을 부정할 것이다.


“아니.”


그럼요? 라고 물었으면 그는 순순히 대답했을까? 아닐 것이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질문에 순순히 답해줄 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늘 만만치 않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면 근질거리는 제 입을 참지 못하고 대답해줄지도 모르지만? 이마저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이니 곤란하기 짝이 없는 상대였다, 오이카와는. 그래서 카게야마는 늘 오이카와가 어려웠던 것 같다. 쉬운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 그래서 따라잡기가 참 벅찬 사람. 이미 아는 사실에서도 그러하니,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얼마나 더 그러할까 예상할 수 없는 사람.


대답은 총성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카게야마는 눈을 떴다.


온몸이 아팠다. 우그러진 범퍼와 산산조각이 난 유리 창문과 찌그러진 시트 사이에서 눈을 뜬 카게야마는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운전석을 보았다. 귀를 찢는 굉음이 있기 전 번쩍이는 빛이 있었다. 별안간 엄습하는 고통 이전에 카게야마는 저를 돌아본 오이카와의 눈과, 그 짧은 시간 스스로 내린 판단에 참을 수 없이 구기고 만 미간과, 짓씹은 입술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들을 통해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손에 운전대가 거칠게 꺾인 순간 카게야마는 그를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늦고 말았다. 굉음, 마치 총성과 같이. 고막을 터뜨리고도 남았을 것 같은 소리가 귓속을 먹먹히 채운 다음에, 눈을 감고. 뜨니, 사방에 붉은빛이 번쩍이고 윙윙대는 사이렌 소리가 척척한 귓속을 비집고 들어오려 애를 쓰고 있었다. 멀리, 그들과 충돌한 트럭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멀리, 카게야마는 멀리 보았다. 그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있는 오이카와를 보는 것을 가능한 한 미루고 싶었기에.


만약 내가 당신에게 물어보았다면 당신은 내게 이미 죽은 사람을 죽일 수야 없지 않겠냐고 말해줬을까?


카게야마는 간신히 끄집어낸 손을 들어 오이카와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향해 뻗었다.


끝까지 내게 친절하게 말해줄 생각은 조금도 없네요, 당신은.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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